아프리카 사상 첫 봅슬레이팀 … 영화보다 영화 같은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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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여자 선수들. 왼쪽부터 은고지 오누메레, 세운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평창=김지한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여자 선수들. 왼쪽부터 은고지 오누메레, 세운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평창=김지한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가. 그들이 만들 영화 한 편을 지켜보라.”

나이지리아 대표팀 인터뷰 #육상선수 출신 삼총사 의기투합 #입문 1년 만에 출전권 … 후원 손길 #“우리 도전 평창서 끝나지 않을 것”

지난 연말, 미국 CNN이 ‘2018년에 주목할 이벤트’ 중 평창 겨울올림픽을 소개하면서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2인승) 선수들을 꼽았다. CNN이 ‘영화 한 편’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꼽은 선수는 주장이자 썰매 조종수 세언 아디군(31)과 브레이크맨 은고지 오누메레(26), 아쿠오마 오메오가(26). 이들 3인방은 눈과 얼음을 보기 힘든 아프리카에서 남녀 통틀어 최초로 만들어진 봅슬레이 팀이란 이유로 평창에서 스타들 못지않은 주목을 받고 있다.

11일 평창선수촌 미디어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평창에 있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스켈레톤의 시메델레 아데아그보(36)와 함께 나이지리아 스포츠 사상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한다.

아디군은 “개회식부터 특별했다. 팀 동료 오누메레가 나이지리아 기수로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혼이 빠지는 것처럼 감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에 감동한 모습이었다. 그는 “개회식 때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한 자원봉사자가 본인이 갖고 있던 핫팩을 스스럼없이 주더라. 한국인들은 늘 가는 곳마다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준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특유의 손하트 인사를 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한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 선수들. 왼쪽부터 세언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은고지 오누메레. 아프리카 최초로 봅슬레이 팀을 꾸린 이들은 ’평창에서 핫팩을 전해준 한국인의 따뜻한 친절에 감동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질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비자]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한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 선수들. 왼쪽부터 세언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은고지 오누메레. 아프리카 최초로 봅슬레이 팀을 꾸린 이들은 ’평창에서 핫팩을 전해준 한국인의 따뜻한 친절에 감동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질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비자]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이지리아계 미국인이이다. 부모님은 1년에 2~3번은 나이지리아를 찾는다. 이들이 처음 힘을 합친 건 2016년 9월. 아디군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나이지리아 대표로 100m 허들에 출전한 적이 있던 육상 선수였다. 이후 사실상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찾았다. 아디군은 “2016년 우연히 나이지리아 노래를 들었다. 그때 나라를 위해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겨울스포츠가 떠올랐다. 고민 끝에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팀을 만들려고 했고, 수소문해 오메오가와 오누메레를 만났다”고 말했다. 육상 선수였던 나머지 둘도 금세 아디군의 아이디어에 함께 동참했다.

오누메레는 “‘도전’은 말로는 쉽다. 실제로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썰매 구하기부터 문제였다”고 말했다. 집에서 손수 만든 나무 썰매로 훈련했다. 학교 육상 트랙에서 스타트 훈련을 하거나 집 마당, 주차장에서 훈련했다. 훈련비가 없어 인터넷을 통해 모금을 요청했다.

오메오가는 “썰매 종목은 기본기가 중요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데 이전 육상 기술을 다 지우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혼자 뛰는 육상과 달리 함께 뛰는 스포츠여서 똘똘 뭉쳐 더 의지하고 훈련했다”고 말했다.유투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몇 몇 기업이 이들을 후원했다. 입문 1년여 만에 나이지리아 겨울스포츠의 개척자가 됐다.지난 2일 나이지리아에서 올림픽 출정식에서 수만명이 뜨거운 응원을 했다. 오누메레는 “우리가 평창에 있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순간이다. 아프리카 최초의 봅슬레이 선수로 나서는 이 순간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도전은 성공”이라고 말했다.

봅슬레이 나이지리아 여자팀. [연합뉴스]

봅슬레이 나이지리아 여자팀. [연합뉴스]

봅슬레이 여자 2인승은 20·21일 열린다. 이들은 영화 쿨러닝의 모티브가 됐던 1988년 캘거리 대회 때 자메이카 봅슬레이팀 이상의 ‘뜨거운 감동’을 준비하고 있다. 아디군은 “우리의 도전은 결코 평창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계속 해서 나이지리아 썰매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경기력을 펼쳐 보이겠다. 우리가 갖고 있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테니 지켜보라”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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