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직 판사 "여름엔 제주서 근무하고파" 글 올린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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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제주, 겨울에는 평창에서 근무하면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싶습니다.”  

 8일 오후 법원 내부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권순건(42ㆍ사법연수원 33기)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글이다.

서울중앙지법 권순건 판사 내부망 글 #전자법원 도입하면 희망지 근무 가능 #“해외, 집 근무도 고려될 수 있어”

그는 “가끔 저같이 여행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는 법관은 여름에는 양양이나 제주도에서 근무하면서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싶고, 겨울에는 평창과 같은 곳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썼다. 주말 사이 호응하는 판사들의 댓글도 늘고 있다.

권순건 서울중앙지법 판사

권순건 서울중앙지법 판사

현직 판사가 왜 이런 생뚱맞아 보이는 글을 올렸을까.
‘판사 뒷조사 문건’ 의혹의 진앙지인 법원행정처(2015년2월~2017년2월)에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권 권사는 “그와 관련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 많이 생각한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바꾸는 재판제도의 질적인 변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글을 시작했다.

요지는 법정에서 당사자를 만나 심문할 필요가 없는 사건은 굳이 정해진 법원으로 출근해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자소송사건을 담당하는 전자법원을 도입하면, 판사 등 총 240여명이 희망하는 어느 곳(제주나 평창 등)에서 일을 하든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권 판사는 “현재 정해진 법원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20세기에 만들어진 고정관념으로 제약되고 있다”며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자소송 사건 중 가족관계 비송사건(개명 등), 전자 약식사건, 전자 신청사건(가압류 등) 등을 예로 들며 “굳이 정해진 법원청사에 출근해 이 같은 업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심문이 필요한 극소수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필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위 사건 중에 심문이 필요한 사건은 원래 이를 담당할 법원으로 송부하면 족하다”고 주장했다. 심문(審問)은 판사가 법정에서 사건 관계자에게 진술 기회를 주고 심사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 권 판사는 판사가 해외나 자택에서 근무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이러한 사건(전자소송사건)만을 담당하는 법관 등은 국내 소재 희망하는 법원에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희망하는 다른 나라나 집에서의 근무 등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법률에 전자법원장이 지정하는 장소에서 근무한다고만 규정하면 될 일이고, 법원으로서는 이를 위한 물적 설비만을 갖춰주면 될 것이란 게 권 판사의 생각이다.
권 판사는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명”이라며 “또한 법원공무원들의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역시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자법원의 개념도입은 이러한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충분한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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