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프랜차이즈 공급가 공개, 우려되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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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기영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협회장

박기영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협회장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주에게 공급하는 필수품목의 가격을 공개하는 정책을 강행했다. 공정위는 이달 초 이런 내용의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확정해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에 넘겼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업계와 법조계·학계는 공정위가 지난해 9월 입법 예고하자 크게 반발해 왔다. 사업자의 비용 및 영업이익에 관한 정보는 영업비밀이라는 수많은 법원 판례까지 제시했다.

공정위는 프랜차이즈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정보공개서에 기재하되 일반인에겐 비공개하고 가맹본부와 협의 중인 예비 창업희망자에게만 비밀준수 서약을 받고 공개하면 유출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맹점 계약을 맺으면 어차피 알게 되는 가격정보이고, 혹시 계약을 맺지 않은 예비창업자가 유출하면 계약위반으로 민, 형사 소송을 제기하면 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업계는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정책이라고 답답해하고 있다. 가맹 본사가 가맹점 계약을 협의하려고 만난 예비창업자 중에 실제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 물품 가격 정보는 가맹 본사가 오랫동안 쌓아온 구매 노하우, 경쟁업체와의 가격경쟁력 등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도 달랑 비밀준수 서약 서류 한장만을 믿고 영업기밀을 공개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다. 또한 가맹본부로부터 받은 공급가격은 가맹점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판매 원가다. 다시 말해 정부가 역으로 가맹점 사업자의 원가를 공개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가맹본부의 걱정은 더욱 크다. 만약 시행령이 확정되면 해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급가격을 공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현재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거의 모든 업종에서 외국계 브랜드와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 외국계 브랜드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가맹점보다는 직영점 형태로 운영 중이다. 즉 가맹사업법 밖에 있어서 공급가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비슷한 경우가 과거 있었다. 2012년 공정위는 기존 가맹점주의 영업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커피·치킨 등 5개 업종에 대해 거리 제한을 뒀다. 커피의 경우 500m 이내에는 새 점포를 열지 않는다는 내용의 모범거래기준을 강요했다. 이 기준에 적용받지 않은 스타벅스 등 외국계 커피 브랜드가 한국시장을 싹쓸이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국내 커피 브랜드들이 연이어 도산하는 등 부작용이 불거지자 공정위는 결국 2014년 이 기준을 폐기했다.

공정위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한다. 100만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인이 공정위의 필수품목 공급가격 공개를 반대하는 이유다.

박기영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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