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훈의 퍼스펙티브

“우리 위협하는 북한 정권 엄격하게 대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청년들의 대북 인식

2030 청년들과의 대화
“청년들은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보다 오늘의 퇴근에 더 관심이 많다. 평창올림픽이 잘 되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보다 내일의 내 삶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조창주·30세)

북한 체제에 이질감 느끼는 청년들 #북 정권에 대해 상호주의 요구하나 #자유 박탈당한 북 주민에 대해선 #꾸준한 교류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 #올림픽 남북단일팀에 분노하는 건 #대북정책 위해 개인 희생하라는 #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대한 반발 #절차적 정당성 중시하는 청년들은 #스마트한 국가·시민 관계 기대해

“남북 단일팀이든 뭐든 간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개입해야 할 일과 그러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송병진·28세)

“올림픽이든 남북 관계든 주요 사회·정치적 이슈에 대해 국가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도 개입해야 한다.” (문옥현·29세)

건조한 숫자로만 나열되는 여론조사는 삶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지 못한다. 필자는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란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로 하락했다는 뉴스들이 요란하던 지난 1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을 통해 소개받은 청년 10명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를 나와 창업을 준비하는 27세 청년, 대기업에 다니는 20대들, 대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는 청년들, 30세의 워킹맘 등과 두 시간가량 대화했다. 청년들의 말은 솔직하고 자유로웠다. 10명의 작은 그룹이지만 몇몇 중요 이슈에서는 상이한 입장들이 드러났다.

이들 청년이 청년 세대를 과학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발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청년들과의 대화를 돌아보며 몇 가지 사회과학적 명제가 떠올랐다.

개인 자유 없는 북한에 이질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첫째, 1987년 민주화 이후 출생하고 성장한 ‘민주주의 세대’의 가장 큰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자유는 국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의 배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방어적 자유만은 아니다. 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공적 이슈에 관여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삶의 질을 지키려는 적극적 자유도 중요하다.

둘째,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가 사라진 북한 체제에 대해 깊은 이질감을 느낀다. 셋째, 북한은 이중적 존재다. 국가로서의 북한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북한 주민은 자유와 삶의 질을 박탈당한 안쓰러운 존재이다. 위협하는 상대로서의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하고 대등하게 상대해야 한다. 동시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과는 꾸준한 교류를 통해서 도와야 한다.

먼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이번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정부의 입장을 청년들이 불합리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정치 행위가 충돌한 데 있다. 게다가 국가의 개입은 절차상 정의를 확보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희생 강요에 분노

청년들이 올림픽 정신과 그 이상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올림픽이 국가 간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와 안녕을 추구하려는 ”(문옥현) 이상에서 시작된 이벤트임을 알고 있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좋다는 총론에 청년들은 동의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정부가 단일팀을 추진하는 방식과 절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선수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치지 않고 하향식으로 추진한 결정이 아쉽다.” (신윤지·25세). 심지어 청년들은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을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것”(우아정·28세)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라는 점에 청년들이 분노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수십 년에 걸친 고도성장의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데에 비해, “청년들은 개인 노동을 통한 노력 이외에는 기댈 데가 많지 않다”(조창주)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쏟아온 노력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의 노력을 남북 단일팀이라는 정치적 명분을 위해 절충하라는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가진 유일한 자산인 개인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절차와 규칙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데,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는 이러한 절차적 정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올림픽 정신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남북 단일팀이라는 명분에 대해 청년들의 지지가 그다지 뜨겁지 않은 또 다른 까닭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어려서부터 북한이 같은 민족이라는 교육을 학교에서 받고 자랐지만, 청년들은 북한과 우리가 같은 민족공동체로서 공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별로 없다고 본다. 청년들은 북한의 언어와 문화 등을 접하면서 헤어진 형제라는 인식보다는 거대한 이질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깊은 이질감의 뿌리는 청년들이 가장 중시하는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에 있다. “한국과 북한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문옥현)라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가치를 둘러싼 이질감은 우리와 북한 사이에서 쉽사리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핵심적 가치를 둘러싼 거대한 괴리감에 더해 북한의 이중적 태도와 핵 위협도 이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어려울 때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우리가 미래를 위해 실질적으로 잘해 보자고 할 때는 선뜻 손을 잡지 않는다.” (임아름·30세) 그는 “남북한 사이에 상호작용은 없다. 북한은 우리가 선뜻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그 존재가 우리를 불편하고 아프게 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20대가 북한 위협 인식 가장 높아

북한의 이중적 태도는 북한에 대한 청년층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대 청년층은 우리 사회 연령 집단 중 북한에 대한 신뢰가 가장 낮다. 2017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서 20대 응답자 가운데 북한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단지 26.2%에 그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심화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로는 매우 일관되게 20대 시민들의 평균 25% 정도만이 북한을 신뢰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도 응답자의 35~40%가 북한을 신뢰한다고 응답해온 30~40대 시민들과는 꽤 다른 양상이다.

청년들의 북한에 대한 신뢰가 낮은 것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인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림2>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대는 모든 연령대 가운데 북한이 무력 도발을 할 것으로 보는 비율이 가장 높다. 2017년 조사에서 20대의 77.9%가 북한이 무력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림2>에서 보자면 2007년 이후 북한의 무력 도발에 따른 위협 인식은 여러 연령 집단 중 20대가 가장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북한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또 청년들은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세대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청년들 역시 우리 사회의 대다수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남북한 사이의 이질감을 줄여나가기 위한 가장 분명한 길은 꾸준한 접촉과 문화 교류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평창올림픽과 같은 계기를 통해서 꾸준히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과의 접촉·교류가 좀 더 분명한 원칙, 구체적으로는 상호주의에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국가로서의 북한은 더는 약자가 아니다.” (임아름) 따라서 상호주의 원칙이 남북 교류에 긴요하다고 청년들은 느끼고 있었다.

세대 간 대북 인식 차이 커

또 청년들은 점점 벌어지는 세대 간 대북 인식에 대해서도 염려를 갖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출생·성장했고, 북한 핵 위협을 줄곧 겪어온 청년세대의 대북관이 기성세대의 대북관과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세대 간 대북 인식 차이로 인해 대북정책을 효과적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현실은 문제다.” (한은수·31세)

끝으로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국가 역할의 범주와 방식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한편으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로 개입해서는 안 되지만, 아울러 자유로운 개인의 “개별적 이기심이 통제될 수 있는 정도로는 개입해야 한다”(신윤지·25세)고 믿고 있었다. 그는 “국가가 개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가 개입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현명하게 구분해서 국가는 분별 있게 개입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가 공존하는 유연하고도 스마트한 국가-시민의 관계를 기대한다.” (이정호·29세)

기성세대의 민족주의적 대북관과 청년층의 가치(개인의 자유와 인권) 중심의 대북관의 거리는 꽤 멀어 보인다. 또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기성세대가 성과 중심의 접근을 하고 있다면, 청년들은 절차적 정당성을 훨씬 중시하고 있다. 이제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안의 갈등은 이념의 문제이면서 세대의 문제이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다.

장 훈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본사 칼럼니스트·리셋 코리아 정치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