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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안전 불감증 대한민국 … 반칙 엄두 안 나게 처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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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발생한 제천 찜질방 화재와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우리가 기억하는 30년 전 재난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성수대교 붕괴가 1994년이었고, 삼풍백화점 붕괴가 그 이듬해였다.

밀양·제천 화재와 세월호 참사 #24년 전 성수대교 붕괴와 닮은꼴 #불법, 감독 소홀, 위험 무시 여전 #반칙엔 수십 배의 손해 입게 해야 #원전 사고 같은 기술 고도화 따른 #‘정상 사고’는 정치적 합의 필요 #사고조차 정치화하는 구태 버리고 #안전 영역에서라도 합의 정치해야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또 어땠는가. 부실 경영, 부실 시공, 감독 소홀, 경고 묵살, 형식적 보수, 규정 무시, 위험 징조 무시 등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권은 책임 공방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이 없고, “현송월 뒤치다꺼리하느라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통령의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홍준표 대표의 대선 출마 이후 경남지사 자리가 권한대행 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경상남도에 속한 밀양 화재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홍 대표에게 있다는 식이다. 둘 다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식의 재난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이것이 전직 도지사의 책임인지 현직 대통령의 책임인지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같은 형태의 재난이 반복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첫째, ‘사건 밖으로 나가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전형적인 수순이 먼저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이다. 물론 책임질 사람은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책임자 찾기가 ‘사건 안으로 들어가기’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제천이면 제천, 밀양이면 밀양 사건의 ‘안으로’ 들어가서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누군가는 처벌을 받고, 어떤 경우에는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책임지고 사퇴한다. 하지만 며칠 못 가 재난은 또 일어난다. 책임은 졌으나 재난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 밖에서’ 재난 분석해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러니 사건 밖으로 나가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이것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였다. 참사 직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국가 대개조’를 약속했다. 그가 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한국 사회는 실제로 달라졌을 것이고, 탄핵까지 이르게 된 국정 혼란도 사전에 바로잡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약속과 달리 ‘사건 안으로’ 들어가 유병언이라는 악마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쉬운 선택’을 했다.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우리는 유병언이 힘자랑 하는 모습과 금수원 앞의 어처구니없는 대치 상황을 질리도록 봐야 했다. 매번 이렇게 쉬운 선택을 하기 때문에 재난은 반복된다. 그러니 정치권의 책임 공방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난의 반복을 부추긴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둘째, 재난에는 유형이 있고, 유형에 따라 예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림>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의 사건 구조를 분석한 것이다. 재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러 개의 하위 사건으로 이뤄진 집합체이다. 이 하위 사건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분석해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인과 관계의 논리는 ‘앞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뒤의 사건도 없었을 것’이라는데 있다. 그림에서 보듯 근본 원인은 세 가지이다. 불법 증축을 포함한 무려 31회의 시설 변경, 의료 인력 감축, 그리고 법령 미비이다. 불법 증축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환자 다수가 밀집한 상태가 됐다. 이는 화재 시 구조에 어려움을 가져온 요인이었다. 또 불법 증축으로 인해 시정 명령을 받았음에도 세종병원은 해마다 이행강제금을 내며 버텨왔다. 그 결과 일단 불이 나자 증축된 통로로 연기가 퍼져 구조가 더 어려웠고 질식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

두 번째 근본 원인인 의료 인력 감축을 보자. 화재 당일 세종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가 의료법상 기준의 절반밖에 없었다. 관할 보건소는 한 차례 고발한 적이 있으나 보건소도 인력과 자원 부족으로 의료 인력을 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인력 부족은 화재 당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다수의 질식 사망자를 낳는 원인이 됐다.

세 번째 근본 원인은 법령 미비이다. 세종병원 규모의 병원에도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소방안전법 개정안은 2016년에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심사까지 300일이 넘게 걸렸다. 법안이 신속하게 처리돼 세종병원에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초기 화재는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증축된 통로를 통해 퍼진 연기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밀양 참사는 예고된 재난

그림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하나는 세종병원의 비극은 여러 해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는 점이다. 세종병원이 허가를 받은 것이 2008년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 증축과 인력 감축이 시작됐다 하니 길게는 10년에 걸쳐 마련돼 온 비극이다.

불법 증축을 하지 않았더라면, 했더라도 시정명령을 받아들였더라면, 의료 인력을 그렇게까지 감축하지 않았더라면, 국회가 신속하게 법안을 처리했더라면…. 이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작동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인명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와 같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단순한 위험이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누적되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 중 어느 하나도 살리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후진국형 재난’의 전형적 특징이다. 성수대교 붕괴도, 삼풍백화점 붕괴도, 똑같은 사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 어떤 종류의 재난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하며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주선 폭발이나 원전 사고 같은 것들이다. 찰스 페로우 예일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이런 종류의 사고들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에 해당한다.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한 예방 장치를 탑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재난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울 게 없는 종류의 재난이 바로 정상 사고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때도 열차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인 마스터 컨트롤 키가 전동차의 예비 전원을 무력화시키는 재난 증폭의 역할을 했다. 또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 방화문 셔터는 승객의 대피로를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기술들을 설계할 때 이런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은 제천·밀양 화재와 같은 후진국형 재난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술 복잡화에 따른 정상 사고까지 늘어가는 총체적 난국이다.

후진국형 재난은 반칙 엄벌주의가 해답

제천·밀양 화재와 같은 후진국형 재난은 관련 규정의 확립과 철저한 집행으로 대부분 막을 수 있다. 수많은 하위 사건 중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것이 후진국형 재난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가림막 하나 없이 행인들과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업하는 포크레인 옆을 걸어 다니고 있다. 비상구에 잡동사니를 쌓아놓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를 점검한 지 몇 년이 지난 사우나에서 목욕한다.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는 ‘반칙들’에 대해 세세한 규정을 만들고 엄하게 집행해야 한다.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공사하다 적발될 경우 그러한 반칙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수십 배의 손해를 입도록 함으로써 아예 반칙할 엄두도 못 내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속도감으로는 무척이나 답답한 세상이 될 것이다. 하루면 끝날 일을 며칠씩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답답함을 인내하는 것은 수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당연한 일이 돼야 한다.

정상 사고를 막는 것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정상 사고를 막기 위한 좋은 경험이었다. 단기적으로는 건설 재개, 장기적으로는 원자력 축소라는 결론 때문에 원전 찬반 양측이 모두 아쉬움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의 내용을 떠나 복잡하고 돌발적이며 위험 요소를 사전에 특정할 수 없는 정상 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에 주목할 때이다.

기술 고도화 따른 재난은 정치 합의 필요

기술의 고도화와 더불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정상 사고의 가능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재난의 스케일은 화재와 같은 후진국형 재난과 비교할 수 없다. 어떤 위험을 받아들일지, 또 어떤 위험은 설사 기술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지 합의하고 결정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련의 재난 이후 정부에서 진행하는 국가안전대진단이 철저하고 장기적으로 지속한다면 후진국형 재난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 사고를 막는 것은 더욱 지난한 일이 될 것이고, 신고리 5·6호기에서 보았듯 그 과정 자체가 고도로 정치적 과정이기도 하다. 정치적 갈등 수준이 낮아져야 더 많은 정상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책임 공방은 허망하다.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후진국형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세세한 규정을 만들고, 현장에서 그것이 실제로 작동 가능한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그것의 집행을 철저하게 감독해야 한다. 둘째, 정상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적어도 안전의 영역에서만이라도 모든 것을 정치 쟁점화하는 구태를 버리고 합의의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