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에 "솔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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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영산회상』중의 한곡을 부르는 단소소리가 토요일 오후 텅빈 교실의 복도를 가로지르며 들려온다.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단소소리는 유난히도 듣는 이의 청각을 집중시킨다.
중경고등학교단소반학생들은 토요일오후 시청각실에 모여단소를 배운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단소를 부는 모습들은 힘겨워 보이기도 하지만 표정만은 진지하다.
『우리민족의 혼을 느끼는 것같아요』중학교때부터 단소를 조금씩 불어왔다는 이현재군(중·1년)은 이렇게 말하고는 겸연쩍은 듯이 웃는다. 너무 거창하게 표현했다고 느낀 것일까?
그러나 곧 이어 또렷또렷하게 말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이군의 생각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한다.
『직접 불어보지 않고는 알수 없습니다. 조용히 단소를 불고 있으면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던가를 어렴풋이 알수 있게됩니다. 선생님 말씀도 외국인에게 다섯시간을 가르쳐도 모르는 것을 우리는 한시간만 배워도 이해한다고 해요. 우리 핏속에 우리 정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중경고단소반은 이 학교 기술교사인 박기홍교사가 지도하고 있다. 박교사는『국악을 전공한 동료교사로부터 단소를 배웠는데 이 학교로 전근해 학생들에게 우리 전통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단소반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중·고교에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은 특활반을 통해 이루어진다. 탈춤반·농악반· 국악반등이다. 10대들은 팝송등 서구적인 것의 선호에서도 어렴풋이나마 우리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고 배우러 애쓴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서 농악반·탈춤반을 이끌고 있는 이장화교사는『다른 특활반과는 달리 전통문화 특활반에 들어온 학생들은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북·꾕과리·징 등이 어울려 한바탕 신명을 내고 땀을 닦으면서 이 학교 농악반의 상쇠인 김진성군(19·3년)은『우리가락의 흥과 힘을 농악을 통해 느낀다』고 말하면서 반원 모두가 한 호횹이 되는 순간이 더 없이 즐겁다고 했다.
사물놀이·판소리·국악공연등에 산대관객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10대들은 사회전체의 전통에 대한 자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하고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리려는 교육적 노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교육에는 우리 국악을 가르치게 되어 있으나 거문고·대금·단소등의 악기는 단지 그러한 악기가 있다는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몇몇 학교의 농악·탈춤반 소속 학생외에는 능악·탈춤에 대한 접근도 불가능하다.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전통문화교육은 교과과정속에만 존재할뿐 실제 가르치지도 않고 지도할 교사도 없다. 전통문화를 널리 걸쳐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국악인이나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와 그 이수자등 후계자들도 그들 나름의 틀에 빠져 10대들과 함께 하는 노력은 소홀히 하고 있다.
박교사는『우리 문화의 정수를 알고 민족의 역사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전통문화는 국민학교때부터 일정한 계획아래 체계적으로 가르쳐야할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나야 한다』면서 『요즘 젊은 교사들 사이에 이 부문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비전문인이지만 자신이 가진능력으로 학생들에게 전통을 알리려는 노력이 생겨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검토아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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