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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튄 역적이 시진핑 전위대로…21세기 '화교'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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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華僑)가 있다’는 말이 있다.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간 화교를 가리킨다. 과거 이들은 왕조를 배반한 역적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덩샤오핑 시대에 경제 건설의 주역이 되더니 시진핑 시대엔 중국몽(中國夢) 건설의 전위대로 떠올랐다.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연선에 포진한 화교가 큰 주목을 받는다. 2015년 전승절 행사 때 시진핑 국가주석이 화교 5명을 특별히 초청해 천안문 성루에 함께 오른 이유다.

[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역대 봉건시대 화교는 #왕조 배반하고 해외로 튄 역적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 경제 건설 주역으로 부상해 #시진핑의 중국몽 제시 이후엔 #일대일로에 포진한 전위대 각광

화교는 중국 본토 외 국가나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계 사람을 일컫는다. 화(華)는 중국을 의미하며, 교(僑)는 타국에 임시 거주함을 뜻한다. 중국인의 해외 진출은 진시황 때 이미 시작돼 명나라 정화(鄭和)의 대항해 때는 큰 물결을 이루기도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화교의 해외 이주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의 내란이나 왕조 교체기에 해외로 대거 도피한 경우다. 대표적 인물이 정성공(鄭成功)이다. 명나라가 망할 때 많은 유민이 대만으로 건너가 정성공과 함께 청에 항거하며 명을 재건하려는(抗淸復明) 투쟁에 참여했고 이중 적지 않은 사람이 동남아로 이주했다.

두 번째는 자연재해, 사회혼란 등으로 생활고에 직면하게 되자 해외이주를 시도한 경우다. 1661~1812년에 광둥성과푸젠성 인구가 각각 20배, 5배 늘었는데 경작지는 각각 27%와 32% 증가하는 데 그치자 많은 사람이 해외 이주를 택했다.

세 번째는 이주 대상국의 이민정책 변화와 같은 외부요인이다. 1862년 미국은 서부개척을 위해 대륙횡단 철도를 부설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대량의 인력을 중국에서 조달했다. 이들은 화공(華工)으로 불렸다. 1세대 미국 화교인 셈이다.

화교를 집계하는 공식적 기구로 중국 국무원 교무판공실과 대만 교무위원회를 꼽을 수 있다. 후자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전 세계 화교는 4136만 명이며, 이들 중 74.3%가 아시아에 거주한다.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3대 국가는 인도네시아(19.6%), 태국(18.2%), 말레이시아(16.4%) 순이다. 또 화교 중 50.8%가 광둥성 출신이고, 34.2%는 푸젠성 출신이다. 한족(漢族)의 한 분파인 객가(客家)인은 414만 명으로 전체 화교의 10%를 차지한다.

이전엔 화교가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섰다면 1980년대 이후엔 유학과 창업, 투자 등 자기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신화교’가 생겼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지역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봉건시대의 화교는 왕조를 배반하고 해외로 도망간 역적에 불과했다. 따라서 화교는 보호 대상도 아니었고 활용할 수단도 아니었다. 이러한 기조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때까지 유지됐다.

그런 화교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40여 년 전부터다. 1970년대 말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광둥성의 선전과 산터우, 주하이와 푸젠성의 샤먼 등 4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경제특구는 외국자본 유치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하는 것에 방점이 있었다. 덩샤오핑은 화교의 85% 가까이 차지하는 광둥과 푸젠 두 곳을 개방의 첫 출발지로 삼은 것이다. 선전은 홍콩 화교, 주하이는 마카오 화교, 산터우는 광둥성 차오저우 출신 화교, 샤먼은 대만 화교를 타깃으로 외자를 유치하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중국의 발전 시계를 10년이나 멈추게 한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 혼란이 끝난 지 불과 4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문혁 시기엔 화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이 ‘반동’으로 몰려 재산을 몰수당하고 농촌으로 쫓겨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홍위병’의 기억이 생생해 중국에 선뜻 투자할 외국기업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나선 게 동남아 화교였다. 이들은 대륙에 남겨진 친척 등을 위해서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했다.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전승절 행사 때 시진핑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 오른 셰궈민(謝國民) 회장이다.

태국 최대 화교 기업인 CP그룹(正大集團)의 CEO 셰궈민은 조부가 광둥성 출신이다. 그는 중국의 첫 번째 경제특구인 선전이 정식으로 생기기도 전인 1979년에 선전 제1호 외자 기업을 설립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중국 정부는 화교를 위한 법규와 별도의 우대 정책을 만들어 고국에 투자한 화교 기업들이 수익을 챙길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현재 CP 그룹은 1200억 위안을 투자해 중국 내 400여 법인을 두고 8만 명의 직원과 함께 연 1500억 위안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에 중국몽이라는 통치 이념을 제시했다. 즉 2021년에 중국인의 먹고 살며 문화생활 등도 즐기는 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고, 2049년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달성하는 것으로 중국몽은 수치화 됐다. 2015년 12월 ‘시진핑 총서기 화교 업무 논술 연구회’라는 모임이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여기엔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 등 정책 싱크탱크 담당자는 물론 국무원 교무판공실 책임자들이 참석했다. 세미나 내용은 중국몽을 이루기 위한 화교들의 역할이었다.

이 자리에서 일대일로 연선 국가들에 거주하는 화교들과의 협력이 크게 강조됐다. 또 화교 출신 창신창업 인재 유치와 같은 주제도 논의됐다. 눈여겨볼 건 ‘화교 동포들이 현지 주류 사회에 융합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세계정세의 변화에 발맞춰 화교 및 화인의 작용과 지위를 새로 설정하는 것’ 등 두 가지 사항이 집중적으로 논의된 점이다.

이는 중국 정부가 과거 화교란 자원을 주로 하드 파워(경제력)로만 이용했다면 이후엔 중국몽 달성을 위해 소프트 파워로도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즉 화교들에게 주재 국가 내 친중국 영향력을 조성하는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이후 시 주석의 해외 방문 시 개최되는 화교 환영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로 현지 국가에서 자선 및 사회사업 등으로 인정받는 인사들이 헤드 테이블에 초청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진핑은 “중국몽은 국가몽, 민족몽이자 모든 중화자녀의 몽(夢)”으로 “화교 동포는 애국심과 거대한 경제력, 풍부한 지적 자원, 넓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서 중국몽 실현의 중요한 역량”이라고 말한다. 중국몽 달성을 위한 화교의 역할과 공헌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화교가 중국몽 실현의 전위대로 변신한 셈이다.

◆김동하

중국 칭화대 법학석사와 한국외대 국제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중국 금융과 산업을 연구했으며, 현재 부산외국어대 중앙도서관장으로 있다. 저서로 『화교 역사·문화 답사기 1』 등 다수가 있다.

김동하 부산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