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시 한수] 동창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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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윤경재의 나도 시인(1)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편집자> 

사방치기. [사진 윤경재]

사방치기. [사진 윤경재]

동창회
어릴 적 너른 운동장 귀퉁이
둘레 치고 너와 놀던
땅따먹기 놀이

작은 돌 골라 손톱 한 번 튀기면
꿈이 열리고
이어 좌우로 나갈 길 살핀다
결국 무사히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다음 차례가 있다

저녁 어스름
이 집 저 집
밥 먹어라 외치는 정겨운 엄마의 부름

땅위에 그어진 굵은 경계들
새날엔 모두 잊혀도
우리 놀이기에 마냥 좋았지

[해설] 평범하지만 본질 잊지 말라는 화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학교 친구들과 모임이 즐겁고 그리워질 때가 온다. 50대 중반을 넘어서 직장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며, 하나둘 집안에 경조사가 들어올 즈음 그동안 소홀했던 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하게 된다.

삼사십 대에는 물론 오십 대 초반에도 직장 동료나 사회 친구가 우선순위에 오르지만, 60세 퇴직할 시기가 다가오면 분위기가 바뀐다. 동창회에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동창회에서는 두 번째 가면이라 할 사회적 체면을 내려놓아서 편하다.

그래서 동창회에서는 너네 나네 하면서 심지어 육두문자마저 양념 삼아 쏟아낼 수 있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처럼 어릴 적 친구들은 웬만한 허물 정도는 다 덮어버리고 받아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작은 불문율이 있다. 정치 문제나 종교 이야기, 금전 이야기는 알아서 꺼내지 말아야 한다.

동창회.

동창회.

중학교 동창회가 있던 날이었다. 일부 동창의 오해로 회장단을 다시 뽑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철을 타고 모임 장소로 가던 중에 옛 생각과 놀이가 떠올랐다. 온종일 땅바닥에서 손을 더럽혀가며 땅따먹기, 사방치기, 자치기, 말뚝박기했었다.

물론 그때도 가끔 의견 충돌이 일어나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다음 날에는 모두 잊고 더 친하게 지냈었다. 이런 사정을 담아 그날 모임에서 내 의견을 낼 요량이었다. 다행히 오해가 풀려 동창회 정관을 새로 정하고 규칙을 만드는 일과 새로 회장단을 뽑는 일은 없었던 거로 마무리 지었다. 난 이날의 느낌을 시로 지어 동창회 뒤풀이에서 발표했다.

땅따먹기놀이는 먼저 자기 손 뼘만큼 자기 집을 정한 뒤에 납작한 돌멩이를 두 번 튕긴 다음에 세 번째에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놀이다. 평범하지만 늘 본질을 잊지 말라는 화두가 담겼다. 사방치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어릴 적 놀이에는 한 번 전진했으면 회귀해야 다음이 있었다.

학교에서 파한 후 저녁 무렵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엄마가 외치는 소리에 모두 흥겨이 집으로 돌아갔다. 땅 위에 이리저리 그어 놓았던 놀이 경계선들은 다음 날까지 이어진 적이 없었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article/2233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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