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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만원이면 장바구니 가득 ‘소소한 사치’, 다이소·차이소·미니소 … 유커도 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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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쑥쑥 크는 중저가 생활용품 시장

서울 명동역 '다이소' 매장. 3만개 넘는 생활용품의 평균 가격은 1200원 정도다. [사진 각 업체]

서울 명동역 '다이소' 매장. 3만개 넘는 생활용품의 평균 가격은 1200원 정도다. [사진 각 업체]

1일 찾은 서울 명동역 인근 13층짜리 통유리 건물. 1층 화장품 코너를 시작으로 8층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1~8층 전체가 중저가 생활용품으로 가득차 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생활용품점 ‘다이소’가 들어선 빌딩이다. 국내 다이소 매장 가운데 가장 큰 이곳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는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자취생 이혜민(23)씨는 “저렴하고 예쁜 물건이 많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찾게 된다”고 말했다.

“1000원~2000원으로 행복 쇼핑” #선두 ‘다이소’ 연 매출 1조6000억 #가성비 좋은 상품 발굴해 판매 #불황 타고 최근 1~2년새 급성장 #일본·덴마크 업체까지 경쟁 가세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만원 한 장으로 장바구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곳들에 소비자가 몰리고 있다. 이른바 중저가 생활용품점으로 불리는 가게들이다. 외환위기 시절 동네 골목에 들어섰던 허름한 ‘1000냥 백화점’을 떠올려선 곤란하다. 도심 한복판이나 백화점 같은 번화가 곳곳에 들어서며 ‘핫플레이스’ 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천원짜리 몇 장으로 제법 세련된 디자인에 성능도 괜찮은 물건을 살 수 있다며 특히 20대와 3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가장 ‘잘 나가는 곳’은 다이소다. 전국 매장 수 1200개가 넘는 다이소 매출은 2016년에만 1조3000억원을 넘었다. 다이소가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관련 업계에선 지난해에 1조6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캠핑용품,애견용품 등 물건 종류만 3만개가 넘지만 가격대는 대충 비슷하다. 500원부터 5000원까지 총 6개 가격 구간을 20년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데 제품 10개 가운데 8개는 2000원 이하다. 평균 가격으로 따지면 1200원 정도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한 번에 평균 5.5개, 6700원 어치 물건을 사간다. 5000원대인 편의점 객단가(고객 1인당 소비하는 금액)보다 높다.

중저가 생활용품 시장

중저가 생활용품 시장

그 뒤를 잇는 곳은 ‘모던하우스’와 ‘버터’다. 이랜드리테일의 알짜 사업분야로 지난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됐다. 모던하우스는 프라이팬 같은 주방용품을 비롯해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 등 8000종류의 제품을 판매한다. 버터는 모던하우스에서 2014년에 따로 내놓은 브랜드로, 10대와 20대 고객을 겨냥해 인형이나 팬시용품 위주로 꾸렸다. 두 브랜드 매장 수는 63개로 2016년 3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샤오미 한국 총판 임직원 출신이 만든 ‘차이소’ 도 지난달 대전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중국산 생활용품 가운데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뛰어난 제품을 발굴해 판매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는 걸 눈여겨본 해외 업체도 국내에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일본과 중국 합작 브랜드인 ‘미니소’ 는 2016년 8월 서울 신촌에 첫 매장을 낸 뒤 1년 반 만에 점포 수를 56곳으로 늘렸다. 청소도구 등 생활용품 대부분이 5000원을 넘지 않고 블루투스 스피커 등 디지털 제품은 1만~3만원 대다. 다이소와 비슷한 형태인데, 디지털 제품군이 좀 더 많다. 지난해 550억 매출을 달성했다.

덴마크 생활용품점 플라잉타이거 코펜하겐. [사진 각 업체]

덴마크 생활용품점 플라잉타이거 코펜하겐. [사진 각 업체]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들어온 ‘플라잉타이거 코펜하겐’은 덴마크 브랜드다. 유럽에 800개 넘는 매장을 두고 있는데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명동과 스타필드 등 9곳에 직영점이 있다. 3000여개 제품의 가격은 5000~6000원대로 북유럽 스타일을 표방하며 독특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으면서 젊은 주부에게 인기가 좋다.

‘리빙 도쿄’는 일본 생활용품 시장 3위인 100엔숍 ‘캔두’와 합작해 일본 현지 인기 제품을 들여와 판매한다.

중저가 생활용품점의 인기 요인은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주부 남지선(36)씨는 “불경기에 한푼이라도 아끼려다 중저가샵에 눈을 뜨게 됐는데 웬만한 물건을 일반 가게의 3분의 1수준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품질과 디자인을 포기한 결과라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도 않다. 다이소에서 2000원에 판매하는 화장퍼프는 2만원이 넘는 비슷한 해외 제품보다 품질이 좋다며 여러 차례 품절 사태를 겪었다. 미니소가 1만9900원에 파는 블루투스 스피커 역시 4만~5만원대 비슷한 제품보다 디자인과 음질이 좋다며 입소문을 타 매장 대표 상품이 됐다.

업계에서도 “단순히 가격만 싸다면 고객을 지속적으로 모을 수 없다” 고 입을 모은다. 다이소 관계자는 “높은 품질을 위해선 국산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술력 있는 국내 중소기업 570여 곳과 거래해 국내 상품 비율이 70%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허장열 미니소코리아 부사장도 “중국에 대량 발주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서도 “디자인과 실용성도 중요한 만큼 전체 제품의 20%는 국내 소비 트렌드에 맞춰 자체 제작한다” 고 강조했다. 매달 수백 개의 신제품을 끊임없이 내놔야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고객이 질리지 않고 방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불황이 일상이 되면서 생긴 가치관의 변화는 중저가 생활용품의 성장을 이끄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분석 연구소장은 “내 집 마련 등 기존의 행복이나 큰 성취를 이루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저렴한 가격에 공간을 꾸미고 물건을 사는 ‘소소한 사치’를 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생활용품 시장은 2015년 기준 12조5000억원으로 2008년 7조원에서 두 배에 가까워졌다. 이 가운데 중저가 생활용품 시장 규모는 업계 추산 2016년 기준 2조원대다. 내년에는 4조원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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