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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검찰 내 성폭력 직권조사…'미투' 행진 속 2차 가해도 심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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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아직도 피해의 악몽에서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들께 위로와 함께 '미투'(Me too)가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피해자들에게) '네 탓이 아니다''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격려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2일 오후 언론 브리핑 자리에서 말했다. 인권위는 이날 오전 상임위원회를 열어 검찰 내 성희롱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사건과 함께 검찰 전반의 성폭력 문제를 직권조사하기로 의결했다. 1일 서 검사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로부터 '2010년 성추행 사건과 이후 서 검사가 받은 2차 피해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접수받은 데 따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가 검찰 전체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 사무총장은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피해를 폭로하는 것이 어렵고, 폭로하더라도 부인 또는 은폐, 회유됨으로써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가 심각하다"며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검찰 조직이 이번 기회를 계기로 곪아 있던 상처들을 도려낼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온라인상에서 폭로하는 '미투' 운동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마저 내부 성폭력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조차 여러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투는 법조계 뿐 아니라 정치권·기업 등 다양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

인권위도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이 물결처럼 번져나가길 희망한다"며 지지 의사를 전했다. 직권조사 단장을 맡은 조형석 인권위 차별조사과장은 "서 검사 사건과 그동안 인지된 다수의 성희롱 사건들, 여성 검사·수사관 등 검찰 전체 여성 직원에 대한 전수 조사 등을 진행할 것"이라며 "강제수사권이 없어 쉽진 않겠지만 만천하에 드러난 검찰 내부 성폭력 사건 처리 시스템의 허점 등을 조사해 정책적으로 권고해 나갈 부분들을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미투 게시판에 올라온 성폭력 피해 경험글들. [모바일 캡처]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미투 게시판에 올라온 성폭력 피해 경험글들. [모바일 캡처]

이날도 미투 운동은 곳곳에서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미투 운동에 동참했던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가해자가 취업을 하려 했던 로펌 대표였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향후 취업 시장에서의 불이익을 당할까봐 저항할 수 없었다며 "(피해자들이) 왜 긴 시간 동안 말할 수 없었고 이제 와서 용기를 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1일 '미투 게시판'을 신설한 이후 국내 여성 직장인들의 경험담도 계속 올라오고 있다. 2일에는 특히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자사 여성 승무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고발이 줄을 이었다. 한 직원은 "교육원에서 박 회장이 본사로 오면 온몸으로 달려나가 팔짱을 끼고 '보고싶었다'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라 지시한다"고 폭로했다.

2010년 자신이 겪은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사진 JTBC]

2010년 자신이 겪은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사진 JTBC]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도 서 검사는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비켜가는 얘기들로 또 다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 검사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직 내에서의 2차 가해는 서 검사도 예상했던 일이라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업무 능력·근무 태도 등 근거 없는 소문의 확산은 큰 상처일 수밖에 없다"며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서 검사처럼 자신이 문제제기 한 사실 관계에 대해 판단도 받기 전에 뼈만 남고 살이 다 도려지는 것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흔히 경험하는 '왜 이제서야 말해?''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식의 조직 내 2차 가해에서 서 검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서 검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공론화한 가장 큰 이유는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취지다. 검찰 간부들의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가 있었는지,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은 없는지 등 진상 조사가 명명백백하게 진행돼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지 않아도 될 분위기가 검찰 뿐 아니라 여러 기관과 기업에까지 확산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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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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