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15년에도 여검사 성추행 의혹 … 검찰, 사표 받고 덮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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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2015년 한 재경지검에서 남자 검사가 후배 여검사를 상대로 강제추행을 시도하는 성범죄가 발생했지만 검찰이 사실 관계를 엄정히 밝히지 않은 채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덮고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검찰청은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동부지검장)’으로 사건을 넘겨 면밀한 조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진상조사단, 성범죄 전수조사 착수 #검찰 내부에선 공론화 꺼려하고 #징계하면 변호사 개업 어려워져 #옷 벗는 수준서 끝내 ‘제식구 감싸기’ #문무일, 전국 여검사 간담회 지시 #모아진 의견, 대검에 직보하기로

이 사건은 지금껏 의혹으로만 떠돌 뿐 명확한 진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A검사는 사건 직후 사표를 냈고 피해자인 B여검사 또한 당시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진상 규명이나 징계절차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는 지난 29일 “검찰내 성폭행 사건도 있지만 검찰에서 덮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검사 등 내부 증언에 따르면 A검사는 회식자리에서 만취한 채 후배인 B여검사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이같은 소문이 검찰청 내부에 퍼지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2015년 당시 A검사는 사표를 제출하고 옷을 벗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함구했고 피해자로 지목된 여검사도 A검사가 사직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의견을 밝혀 조사나 감찰이 이뤄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유일한 자료는 사건 개요를 파악하기 위해 2015년 5월 14일에 검찰 내부에서 작성된 한 장 짜리 보고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2015년은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된 시점인데다 강간·준강간 범죄는 형사처벌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검찰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당시 검찰 내부에선 이 사건과 관련해 “징계절차에 착수하는 등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가해 검사가 옷을 벗는 수준에서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A검사는 사표를 낸 뒤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대기업 법무팀에 취업했다. 그는 현재 이 대기업에서 법무담당 임원으로 재직중이다.

익명을 요청한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내부에선 성범죄 등 비위 사실이 드러나도 모든 징계절차를 사표 한 장으로 대신하려는 문화가 있다. 징계가 이뤄지는 순간 변호사 개업이 어려워져 밥줄이 끊기게 되는데, 이를 우려한 ‘제 식구 감싸기’ 문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 내 성범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희진 동부지검장이 이끄는 진상조사단은 ‘전수조사’ 카드를 꺼냈다. 공소시효 도과 등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처벌은 불가능하다 해도 전수조사를 통해 ‘성범죄를 저지르면 끝까지 문제삼겠다’는 인식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검사 6명과 수사관 등 총 12명 안팎으로 꾸려지는 조사단은 우선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2010년 장례식장 성추행 사건과 이후 통영지청으로의 부당인사 발령의 전모를 밝힐 계획이다. 또 내부 폭로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들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아버지뻘인 검찰 간부가 C여검사를 자신의 관사로 불러 어깨에 손을 얹는 등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피해 여검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간부는 이후에도 호텔 일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자고 제안하는 등 지속적으로 추근댔다고 한다. 성추행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견디지 못한 C여검사는 결국 사표를 내고 검찰 조직을 떠났다.

전수조사의 연장선상에서 문무일 검찰총장은 전국 18개 검찰청에 2일까지 ‘여검사 간담회’를 개최하라고 주문했다. 여검사들은 이를 통해 의견을 모은 후 직속 상관에 보고없이 바로 대검찰청에 보고서를 전달하게 된다. 대검에 접수된 사건은 진상조사단으로 이첩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윤호진·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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