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전략’이 뭐길래…빅터 차 낙마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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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주한 미 대사 내정자에 대한 인사철회로 ‘코피(bloody nose) 전략’이 화제의 키워드가 됐다.
 지난달 31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빅터 차 인사철회를 보도하면서 코피 전략을 대거 언급했다. 코피 전략을 둘러싸고 빅터 차가 백악관과 갈등을 빚다가 낙마했다는 설 때문이다.

북한 핵·미사일 시설에 대한 ‘정밀타격’ #가시적·치명적 피해 입혀 항거불능이 목표 #“트럼프가 수백만명 목숨 담보해선 안 돼” #빅터 차,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 등도 반대

지난해 7월 괌을 출격한 B-1B 랜서(별칭 죽음의 백조) 전략폭격기가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와 주한 미 공군의 F-16 전투기 등과 함께 폭격 훈련을 실시했다.[사진=공군]

지난해 7월 괌을 출격한 B-1B 랜서(별칭 죽음의 백조) 전략폭격기가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와 주한 미 공군의 F-16 전투기 등과 함께 폭격 훈련을 실시했다.[사진=공군]

 코피 전략은 최근 미국 내에서 대북 정책을 논의하면서 등장한 용어로 상대에게 가시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혀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군사용어다. 북한과 관련해선 핵ㆍ미사일 시설을 ‘정밀 타격(surgical strike)’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북 군사대응책인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과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과도 유사한 맥락의 개념이다.

 선제타격은 적의 공격 징후가 보일 때 공격 받지 않기 위해 먼저 공격하는 것을 의미하고, 예방타격은 뚜렷한 적의 공격 조짐이 없지만 향후 적의 미래 공격을 사전에 없애기 위해 공격하는 것이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선제공격은 합법이지만 예방타격은 불법이다. 예방타격이 공격할 의도가 없는 적을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장사정포.

북한 장사정포.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무대로 거론되는 코피 전략을 포함한 선제 또는 예방 타격, 정밀타격 등을 상당히 위험한 군사적 옵션으로 평가한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북한의 보복 능력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인 핵ㆍ미사일을 제외한 170mm 자주포ㆍ240mm 방사포ㆍ300mm 방사포 등 재래식 포 무기만 동원하더라도 수도권은 수일 내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과거 남북회담에서 북한의 고위 인사(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주장을 한 것도 이에 근거한다.

 빅터 차는 내정 철회 직후 WP 기고문을 통해 “대북 공격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단지 지연시킬 뿐 위협을 막지는 못한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의 한 직위(주한 미 대사) 후보로 고려되던 시기에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도 31일 코피 전략과 관련, “그것은 매우 큰 도박이다. 나는 그 도박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방적인 대북 공격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허튼 생각과 허세가 수백만 명의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에는 현재 약 2만8000명에 달하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도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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