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女부장검사 “미개한 조직 아냐. 응분의 대가 치르게 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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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사진 JTBC]

자신이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 [사진 JTBC]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전 법무부 핵심 간부였던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고백을 한 이후, 재경지검 내 한 여성 부장검사가 ‘후배 여성검사님들께’라는 제목의 글을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올렸다.

이 부장검사는 글에서 자신이 임관했을 당시의 일화를 꺼내며, 당시 검찰에 압도적으로 남성의 숫자가 많아 여성 구성원을 대하는 방법이 서툴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18년 동안 조직은 많이 바뀌었다. 많은 여자 선배님들을 비롯해 구성원들이 여러모로 노력해왔던 것도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의식이 성숙된 것도 있다”며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남녀가 함께 존재하는 어느 조직이 다 그렇듯) 여전히 부당한 성적 괴롭힘은 암암리에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여검사님들이싱숭생숭해 하실 것 같다. 공감하시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을 것”이라며 최근 내부 성추행 문제를 폭로한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글에 대해 언급했다.

이 부장검사는 “우리는 더는 조직 내의 성적 괴롭힘 문제에 있어서 미개한 조직이 아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가해자에 대해 단호하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며 “구체적 사례를 들 수는 없지만, 최대한 피해자를 보호하며 가해자를 응징한 경험도 있다. 피해자만 용기를 내주면,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진지하게 고충을 토로한다면,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 이슈가 된 글을 보고 제가 가장 걱정됐던 점은 혹시라도 후배님들이 ‘참아라’ ‘너만 다친다’는 반응이 우리 조직 내의 일반적인 반응인 것으로 오해해 말 못 할 고민을 더욱더 꼭꼭 숨기고 혼자만 힘들어하게 될까 봐 그것이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장검사는 “조직 내 성적 괴롭힘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어느 조직이나 현명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라 부당한 상황에 봉착한 분이 있다면 청에서 가장 기수가 높은 여자 선배에게 상담하라”며 “아니면 저한테라도 알려주신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돕고 싸우겠다”고 성적 괴롭힘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을 조언했다.

또한 “여성 검사들은 잠재적 피해자가 아니라 조직을 지탱하고 조직문화를 변화시켜 나가는 당당한 한 축이고 주체”라며 “우리가 상시적인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노출돼있고 구석에 웅크려 울고 위축되고 찌그러져 있기만 하는 초라한 존재가 아님을 우리 스스로 잘 알지 않나”고 말했다.

그는 덧붙이는 글로 “고민을 들어 달라, 가해자를 처벌받도록 해 달라, 징계받도록 해 달라, 격리해 달라, 피해자를 보호해 달라 등 요구에 대해서는 팔 걷고 돕겠다”면서도 “피해를 당했으니 서울로 발령 내달라, 대검 보내 달라, 법무부 보내 달라 등의 요구를 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없음을 깊이 양해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문무일 검찰총장은 31일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발족하고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56·사법연수원 19기)을 조사단장으로 임명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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