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옥탑방의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

십여 년 만에 이사를 했다. 오래 살던 집을 정리하니 갖고 있던 짐의 반 이상이 그냥 버리면 되는 것들이었다. 쓰레기를 안고 살아온 셈이다. 새로 얻은 집은 다행히 교통 사정도 나쁘지 않고 전망도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들 물어온다, 몇 층짜리 아파트냐, 거기선 한강이 잘 보이냐. 사실 우리 집 거실에서도 한강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고개를 빼고 몸을 틀어야 겨우 조금 볼 수 있고 그나마 요즘 같은 겨울철에만 가능한 일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아주 살짝 강 쪽이 보이는 저층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강보다 나무가 있는 풍경을 선호하는 편이라 만족하는데, 주위의 관심은 대부분 한강 조망에 쏠려 있다.

더 높고, 화려하게 … 성공의 상징된 한강변 펜트하우스 #드라마에서도 사라지는 옥탑방, 청춘들의 집은 어딜까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그 규모나 풍경이나 세계 어느 유명 도시의 강 못지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요즘 한강 조망권에 붙는 프리미엄은 정말 깜짝 놀랄 수준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강이 잘 보이는 고층은 억대 이상 더 비싸다고들 한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도 젊은 출연자가 고층으로 이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성공했다’는 코멘트를 반복해 강조하고 있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층은 지금 이 시대의 워너비 주거공간인 것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강이 보일수록 부러움을 산다.

한 건축가의 인터뷰를 보니, 인간이 고층 건물을 짓는 이유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란다. 그 권력을 어디에 쓰게 될진 몰라도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을 내 집 안에서 굽어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일단 매력적일 수 있겠다. 며칠 전, 새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며 인사차 찾아온 젊은 커플의 꿈도 강변 고층아파트였다. 결혼도 출산도 포기할 만큼 어렵다는 요즘 청년세대가 결혼을 한다니 얼마나 축하할 일인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거란 덕담과 함께 되물으니, 진짜 꿈은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며 크게 웃었다. 예비신랑이 거주하는 옥탑방에 신혼살림을 차리기로 했을 만큼 여유가 없으니 그저 꿈이라도 마음껏 꾸어본다는 거였다.

한동안 가진 것 없는 청년 세대가 주인공인 TV 드라마의 주 무대는 옥탑방이었다. 지난해 청춘드라마 중 거의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한 ‘쌈마이 웨이’의 낡은 연립주택에도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이 있어, 거기서 남녀 주인공이 맥주 한 캔 하며 세상에 대한 울분도 토하고 다시 싸워갈 용기를 내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 속 옥탑방 청춘은 낭만으로 포장된 허상에 불과한 면도 있었다. 실제론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더 추운 곳이라 요즘 같은 한파엔 여간 고생이 아닐 거다.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나마 미래에 대한 전망을 허용하고 있었던 곳이 옥탑방이다. 청년의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 보는 시점이 허락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엔 청춘드라마에서도 옥탑방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를 보니 서울 청년가구의 30%가 지하방과 옥탑방, 고시원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다세대 지하방이나 고시원 쪽방에서는 옥탑방에서와 같은 전망도 불가능할 것 같아 안타깝다. 세상을 굽어볼 수 있는 그 시선만이라도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 특정 지역의 아파트값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데,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청년 주거 문제는 현재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로 더 넓게 다각도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며칠째 매서운 추위에 바람까지 세차게 분다. 창밖의 나무가 휘어질 듯 흔들리는 걸 보니 옥탑방에서 새 출발한다던 젊은 커플 생각이 난다. 거기서도 한강이 보인다고 했었는데. 나도 목을 빼고 몸을 살짝 틀어 창밖을 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강가 풍경도 볼만하다. 그러고 보니 한강은 어디서 봐도 괜찮은데, 저걸 위해 우리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들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