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용미용북의 지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함에 따라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닫혔던 남북의 길이 열렸고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까지 이어질지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남북 대화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대화로 이어지게 하고 다양한 대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에 부는 ‘훈풍’이 북·미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대결로 돌아갈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평창 참가에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당황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대화를 100% 지지하고 김정은과 통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이 평창 겨울올림픽 메시지를 하이잭(hijack·납치)하는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의 뉘앙스가 조금 달라 미국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최고조의 갈등을 빚었던 북·미 관계를 고려하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쉽게 풀릴 거라 기대하는 건 우물에 가 숭늉 찾기다.

북·미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북한은 미국을 불신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양국의 사정을 고려하면 중재자 없이 당사자끼리 문제를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이 북·미 관계를 개선할 최적임자로 나설 타이밍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오해받지 않으면서 용미용북(用美用北)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참고할 사례는 리콴유(1923~2015) 전 싱가포르 총리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영토가 서울의 1.2배에 불과한 싱가포르를 미·중, 양안(중국+대만), 남북한을 넘나드는 균형 잡힌 외교 강국으로 만든 전략가였다. 리콴유는 75년 장징궈(1910~88) 당시 대만 총통대리와 군사협정인 ‘별빛(星光) 프로젝트’를 맺었다. 이는 대만이 싱가포르군에 군사훈련 장소를 제공한 비밀 협정이다. 싱가포르는 국토가 좁아 대만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며 대만과 군사 교류를 이어 갔다.

중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훈련 장소를 중국 하이난 섬으로 옮기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리콴유는 ‘하나의 중국’ 인정과 대만과의 군사 교류는 별개라며 거절했다. 대신에 자신을 모델로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덩샤오핑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하고 대규모 투자로 대답했다. 이에 따라 리콴유는 양안으로부터 싱가포르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리콴유 외교’에서 용미용북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듯싶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다른 사람이 이전에 발견한 것을 발견하는 것은 쉽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갖고 북·미에 문을 두드리면 가능하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