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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정치에 휘둘리는 한국 우주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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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산업부 차장

최준호 산업부 차장

우주 탐사는 전 세계 어디서나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거대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군사로켓 개발 등 ‘냉전(冷戰)’ 경쟁을 벌여 온 미국은 언제든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전쟁영웅 출신의 공화당 소속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58년 7월 그는 미 항공우주국(NASA)을 출범시켰다.

6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케네디가 승리하면서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그는 61년 5월 의회연설에서 “60년대가 가기 전에 인간이 달에 착륙한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계획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아폴로 계획’의 시작이었다.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예산과 짧은 일정에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케네디는 흔들리지 않았다. 67년 1월 아폴로 1호의 화재로 우주비행사 3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아폴로 시리즈는 한 발짝씩 달에 다가섰다.

그사이 정권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케네디 대통령이 심은 꿈은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 때 열매를 맺었다. 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후 아폴로 계획은 75년 공화당 포드 대통령 때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미국이 우주 초강국이 되고,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국가가 된 배경이다. 시작은 정치였지만 미국의 과학은 정치를 뛰어넘었다.

눈을 한반도로 돌려 보자. 2007년 11월 노무현 정부하의 과학기술부는 2020년 달 궤도 탐사선 1호를, 2025년 달 착륙선을 탑재한 탐사선 2호를 발사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우주 개발 청사진’을 발표했다. 2016년까지 3조6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예산 계획도 세웠다.

정권이 바뀐 이명박 정부는 ‘노 대통령 표 달 탐사’에 관심이 없었다. 뒤를 이은 박근혜 대통령은 난데없이 “2020년 달에 태극기가 휘날리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애초 계획을 5년이나 앞당긴 것이다. 갑자기 짧아진 일정에 대전의 우주과학자들은 경악했다.

다시 정권이 바뀐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달 탐사 계획을 ‘전 정부의 과학 적폐’로 몰아세웠다. 여당 소속 박홍근 의원은 “달 탐사 2단계(착륙) 추진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때문일까. 다음달 5일 결정될 ‘우주 개발 계획’에 따르면 달 착륙은 사실상 포기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달 착륙은 ‘관련 기술이 확보된다’는 조건하에 2030년까지 하겠다고 한다. 애초 계획보다는 5년, 전 정권보다는 10년 늦어진 계획이다. 이 땅의 우주과학은 5년마다 정치에 휘둘린다.

최준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