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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사망한 당직의사…“끝까지 소화기 놓지 못해”

중앙일보

입력

밀양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당직의사 민현식 씨가 평소 일했던 행복한병원 사무실의 모습. 이은지 기자

밀양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당직의사 민현식 씨가 평소 일했던 행복한병원 사무실의 모습. 이은지 기자

“원칙주의자여서 평소 성실하고 뼈 골절 수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의사였다. 밀양 화재 당시에도 의료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소화기를 놓지 못한 것 같다.”

민씨가 일했던 병원 원장 “원칙주의자여서 환자 대피 의무 다하다 참변” #전 직장이었던 세종병원에서 당직 의사 요청할 때마다 거절 못하고 지원

경남 밀양시 하남읍에서 행복한병원을 운영하는 김진국 원장이 기억하는 민현식(59) 씨의 모습이다. 민씨는 지난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에서 1층에서 유일하게 사망한 채로 발견된 의사다. 민씨는 김점자(49) 책임간호사, 김라희(37) 간호조무사 등과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 대피를 위해 애쓰다 1층 응급실 주변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민씨는 지난해 2월부터 행복한병원 소속 정형외과 과장으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25일 야간에 세종병원에 당직 근무를 지원하다가 변을 당했다. 평소 지각하는 법이 없던 민씨가 지난 26일 오전 9시가 넘어도 출근하지 않자 김 원장이 직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가끔 세종병원에서 야간 당직 근무를 해왔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김 원장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세종병원에서 우리 병원으로 이직한 직후에도 가끔 당직 근무 지원을 나가길래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었다”며 “그 이후에도 가끔 당직 근무 지원을 나갔다는 직원들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고 회고했다. 시골 마을이라 정형외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해 세종병원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마다 전임자였던 민씨에게 당직 근무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김 원장은 추측했다.

밀양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당직의사 민현식 씨가 평소 입었던 의사 가운. 이은지 기자

밀양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당직의사 민현식 씨가 평소 입었던 의사 가운. 이은지 기자

원칙주의자였던 민씨는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했다.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성실하게 했고, 뼈 골절 수술에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김 원장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끝까지 환자를 구해야 한다는 의료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병원을 떠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워했다.

민씨는 정형외과 전문의를 역임한 아버지를 따라 진주고와 밀양대 의대를 나와 한림대 조교수, 세종병원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행복한병원으로 옮겼다. 경기도에 있는 아내(55)와 두 아들과는 떨어져 밀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민씨의 시신은 밀양 새한솔병원에 안치돼 있다. 밀양 시내에 장례식장이 부족해서다. 유족들은 겨우 장례식장을 찾아 29일 빈소를 꾸릴 예정이다.

밀양=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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