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책 혼선에 몽둥이 휘두른다고 강남 집값 잡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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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암호화폐 투기 논란과 관련, “경제학자 입장에서 투자와 투기는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 집값도 마찬가지다. 오를 만하니까 오르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23~25일 사흘간 보도한 ‘강남 집값의 역설’ 시리즈는 강남 집값이 오르는 이유를 잘 보여 준다.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의 우선선발권을 없애는 등 특목고를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몰고 있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역설적으로 강남 8학군의 매력을 높인다. 지난해 8·2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가 예고되자 다른 지역의 아파트를 팔고 강남의 똘똘한 집 한 채에 집중하는 시장 움직임도 감지된다. 교통·공원 등의 공공 인프라도, 극장·쇼핑몰 등 민간 생활편의시설도 강남에 집중돼 있다. 강남 선호에는 이처럼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여전히 ‘투기 프레임’에 갇혀 있다. 지난해 “주택을 투기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시각이 대표적이다. 아파트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에서 40년으로 되돌리는 방안이나 재시행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책들이 단기적으로 주택 수요를 줄여 집값을 일시적으로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 대책은 될 수 없다. 때려잡기식의 세금 폭탄은 풍선효과만 부를 뿐이다. 당장 재건축을 묶자 강남 새 아파트값이 치솟지 않는가.

세금만으론 강남 집값 문제를 풀 수 없다. 강남에 버금가는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정공법이고 장기 대책이다. 서울 비강남 지역의 공공 인프라와 생활편의시설을 개선해 또 다른 ‘강남’으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경제부처와 교육부·서울시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국토부가 강남 부동산을 내리누를 때 교육부가 거꾸로 강남 8학군을 띄우는 정책 혼선부터 교통정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