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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샷] 고1 때 딱 한 번 눈 맞았다 결혼한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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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내 인생의 다섯컷 ⑯ 김성식

한국 사회에서 '58년 개띠'는 특별합니다. 신생아 100만명 시대 태어나 늘 경쟁에 내몰렸습니다. 고교 입시 때 평준화, 30살에 88올림픽, 40살에 외환위기, 50살에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고도성장의 단맛도 봤지만, 저성장의 함정도 헤쳐왔습니다. 이제 환갑을 맞아 인생 2막을 여는 58년 개띠. 그들의 오래된 사진첩 속 빛바랜 인생 샷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봅니다.

58년생은 평준화 1세대, 소위 ‘뺑뺑이 1기’이다. 나 역시 추첨으로 부산고에 입학했기에 갑자기 바뀐 입시에 혼란스러우면서도 선배들의 만만치 않은 괄시와 눈총도 받아내야 했다. 또, 좁은 교실에 남학생 60명이 바글바글하니 웃지 못할 사건·사고도 참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만큼 진한 우정이 있었다. 지금처럼 휴대폰만 쳐다보며 살던 때가 아니었기에 틈만 나면 학우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면 함께 야구장으로 뛰어가곤 했다. 여학생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연합동아리에 가입하고는 관심 없는 척, 금방 들통날 연기를 하는 순수한 빡빡머리들의 시대였다.

사진은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찍은 것이다. 내가 궁금하다면 유재석 씨를 닮은 사람을 찾아보길 바란다.

유신철폐,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의 아픔, 전두환 정권 퇴진운동 등 소위 ‘긴급조치세대’ 학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나는 대학 시절의 사진이 많지 않다. 이건 어머니께서 소중히 간직해오신 유일한 졸업식 사진이다.

내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하늘을 날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기뻐하셨다. 피난민으로 부산에 정착해 넉넉하지 않은 살림으로 삼 남매를 키우고, 고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홀로 생계를 꾸려갔으니 장남이었던 나에 대한 기대와 감격이 컸으리라.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만큼 나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자주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 중간에 학업을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옳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하되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며 끝까지 나를 독려해주신 어머니 덕분에 77학번 김성식은 84년에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사진 속 어머니의 학사모는 내게 있어 불효의 상징이자 한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신뢰의 징표이다.

‘한번 눈 맞으면 결혼까지 해야 한다.’ 우리 어릴 적에는 참 순수해서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나 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나와 아내가 수년간 천릿길을 사이에 두고도 결혼까지 성공했으니 말이다.

우리 58년 개띠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많은 학생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산업현장으로 취업하거나 일부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는 전자회사에 기능공으로 취업했고, 나는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나야 했다.

각기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왔음에도 우리는 순정 하나로 11년간의 장거리연애를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엔딩이 나의 첫사랑이자 끝사랑, 내 인생 최고의 동반자인 아내의 묵묵한 기다림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임을. “58년 개띠는 순정파!!”

유치장 창살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나와 동지들의 사진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1978년, 1986년 두 차례 투옥되면서도 내 안에 민주화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돈도, 빽도 없지만 뜨거운 가슴만으로도 엄혹한 시대에 맞설 수 있다는 깡이 생겼다.

2000년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관련법이 제정되었는데 나는 명예회복이나 보상신청을 하지 않았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내게 큰 명예이자 보상이고,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모든 시민의 땀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도 풀어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면 차가웠던 그곳을 떠올려본다. 바닥은 차가웠지만, 동지의 가슴과 민주화의 열정은 뜨거웠다.

경기도 정무부지사 재임 중 농업협력을 하되 쌀 대신 종자와 농법을 주는 경기도 남북협력사업을 기획하여 추진하였다. 직접 북한에 방문해 관계자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는데 이 사진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새로운 남북협력사업을 제시했다는 평가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지만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함께 모내기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우리 58년 개띠들은 중고등학생 시절에 멸공 포스터를 붙였고, 청장년 시기에는 남북화해협력관계의 발전을 경험하였다. 지금은 북핵으로 남북긴장 관계가 유지되고 있으니 60년 인생동안 남북관계의 냉·온탕을 모두 겪어온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각기 다른 해답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 가슴이 짠하고, 힘들더라고 통일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특별한 이야기)
나는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조금 쑥스럽지만 타칭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다. 6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선정되었고, ‘4년 연속 국회 백봉신사상 베스트10’, ‘보좌관이 뽑은 올해의 의원상’, ‘국회의원이 가장 후원하고 싶은 의원 1위’, ‘입법 우수위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노력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가 개혁되어야 한다. 지금 한 정당, 한 정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2016년 양당 기득권 중심의 정치판을 제대로 바꾸기 위해 국민의당을 창당하였고, 낙선을 각오하며 다시 총선에 뛰어들었지만, 관악구민들이 벌써 쉬면 어떻게 하냐며 재선시켜주었다. 당선 이후 ‘여·야·정 민생경제회의’를 제안하고 선도했으며, 여야가 함께 선거구개혁을 논의하는 ‘민심연대’를 꾸리는 등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치개혁은 언제나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이 또한 밤에 태어난 58년 개띠 정치인의 운명이라 믿는다.

58년 개띠 인생 샷을 보내고 50만원 상금 타세요

중앙일보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궤를 함께한 58년 개띠 여러분의 앨범 속 사진을 기다립니다.
응모해주신 사진과 사연은 중앙일보 [더,오래] 지면과 온라인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독자의 호응이 컸거나 공유·공감·댓글이 많았던 응모작 4편은 각 50만원의 상금도 드립니다.

응모 대상: 58년생(본인은 물론 가족·지인 응모도 가능)
응모 기간: 2018년 1월 31일까지
보낼 곳: theore@joongang.co.kr
보낼 내용
①자기소개와 현재 프로필 사진
②추억 속 5장의 사진과 사진에 얽힌 사연(각 300자 이상)
※사진은 휴대폰이나 스캐너로 복사한 이미지 파일로 보내주세요
③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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