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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된 '국민정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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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그런데도 이 실장의 말이 거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국민정서를 앞세운 여론몰이야말로 이 정부의 특기가 아닌가. 노 대통령도 지난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국민정서에 어긋난다"며 기업을 압박했다. 법보다 국민정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직하게 벌었건 아니건 재산 정도로만 20 대 80으로 편을 갈라 국민정서를 자극한다. 반세기 전 부친의 친일 문제를 따지는 과거사,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도 국민정서가 기준이다. 그런데 갑자기 '국민정서법이 문제'라고 하니 생뚱맞을밖에.

노 대통령도 국민감정만 앞세우진 않았다. 대연정 문제에 대해선 "민심이라고 해서 그대로 모두 수용하고 추종만 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때는 법을, 어떤 때는 국민정서를 앞세우니 헷갈리게 된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시스의 복수'에 나오는 악의 제왕 다스베이더(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대사다.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모두 내 적이다." 국민정서도 나와 함께하지 않는 것은 적들의 정서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내 편이냐 아니냐다. 내 편의 정서는 일부 시민단체와 인터넷에서 형성된다. 모든 정보를 쥐고 있는 대통령마저 정부의 공식 통계보다 감정을 실은 네티즌의 통계를 인용했다 번복하는 소동을 벌이는 판이다. 대통령이 직접 댓글을 달고, 정부가 인터넷 신문을 만들고, 포털마다 블로그를 만들어 직접 홍보에 나선다. 그렇지만 한 조사를 보면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댓글을 남긴 사람은 100명 가운데 1명이 안 되고, 1만 명 가운데 3명 정도가 전체 댓글의 절반 이상을 달았다고 한다. 이런 극소수의 의견을 근거로 국민정서법을 만들어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 온 것이 이 정부다.

인터넷만이 아니다. 거리의 집단 행동에도 내 편이 있고, 네 편이 있다. 법 질서를 지키려는 경찰은 징계를 당해도 불법 시위를 벌인 이는 큰소리를 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정권이 나서 내 편을 감싸니 극단적인 시위 방법도 바뀌질 않는다. 죽창이 나오고 단식과 분신, 생명을 수단으로 내걸기도 한다. 감정의 인플레다. 소수파의 의견도 존중돼야 하지만 이해 조정이 제도화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런 방식의 여론 만들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지는 해가 뜨는 해를 당하지 못한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노 대통령이 자신을 만났을 때도 "'이 총리 유임' 쪽의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이 총리의 사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일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정서를 앞세워 온 이 정권도 그 부메랑을 맞은 셈이다. 그래서 '한비자'는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생스럽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고 충고한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