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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변했는데 정책공급 방식은 80년대 수준… 새로운 성장동력 지방서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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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무늬만 자치라는 지적이 높고, 수도권 집중, 지역 격차, 국토의 불균형 문제는 여전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전회의 개막식에서 송재호 지역발전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전회의 개막식에서 송재호 지역발전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국민은 똑똑해 지고 시대가 변했는데 정부의 정책 공급 방식은 1980년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중앙 공급식 정책은 한계에 도달했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지방에서 찾아야 한다고도 진단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정책 대안을 찾기 위해 집단 지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회과학 분야 38개 학회 제주에 모여 지방분권·균형발전 난상토론 #수도권 집중·지방소멸 공감, 지방분권·균형발전 우선 순위는 이견 #"단계적 개헌보다는 권력구조개편·분권강화 동시 개헌 바람직"

지난 24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개막한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전회의’에서는 국내 사회과학 분야 38개 학회 전문가 300여 명이 모여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수준을 진단하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9개 주제별로 토론을 거쳐 26일 열리는 공론의 장에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24일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개막세션에서 한국의 새로운 도전과 시대적 소명,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24일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개막세션에서 한국의 새로운 도전과 시대적 소명,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박명규 한국사회학회장(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과거에는 위로부터 정부로부터 동력이 나왔지만, 이제는 지역, 아래로부터 활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발전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며 “바로 지금이 젊은층 문제와 양극화 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방분권을 이뤄낼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홍배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장(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은 “1980년대에도 균형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지역 간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했다”며 “이제는 권한만 남은 것 같다. 분권을 통해 국토를 개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 개막세션에서 김의영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토론을 하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 개막세션에서 김의영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토론을 하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비전회의에서는 수도권 집중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졌다. 역대 정부에서 중앙의 자원을 강제로 지방에 분산시켰지만, 여전히 수도권 집중이 가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정부 정책이 수도권 기능을 단순히 이전하는 데 불과했다”고 말했다.

 2010년 48.7%였던 수도권 인구 집중도는 2015년 49.2%로 높아졌다. 연구·개발(R&D) 투자는 64.3%에서 67.3%, 지역 내 총생산(GRDP)은 48.7%에서 49.4%로 각각 올랐다.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 등에도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한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은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중앙정부 중심의 산업발전으로 부작용이 발생했고 결국 한계에 도달한 것”이라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수준이지만 여전히 지역 간 격차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 개막세션에서 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24일 제주도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젼회의 개막세션에서 임승빈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제주=프리랜서 장정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두 가지 과제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구정모 한국경제학회장(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은 “두 개의 다른 가치가 상충하고 보완하는 부분이 있지만, 균형발전이 우선”이라며 “지방분권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목표는 균형발전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의영 한국정치학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은 “지방분권을 단순하게 얘기하면 다양성이고 그 안에 갈등과 혼란이 존재할 수 있다”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갈등 조정과 타협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단계적(2단계) 개헌에 대해서는 참여자 대부분이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지방분권 문제가 중앙 권력구조와 떨 수 없는 관계인 데다 대통령 중심제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4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전회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

지난 24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비전회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

강제상 한국행정학회장(경희대 행정학과 교수)은 “권력분산은 룰의 문제, 지방분권은 학습이 문제로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의영 한국정치학회장도 “현실적으로 단계적 개헌이 가능하겠지만, 시대적으로 봤을 때 같이 하는 게 맞다”며 “눈앞의 지방선거만 생각하지 말고 정치권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5일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헌법과 법률은 자치단체의 손발을 묶어 놓고 특성에 맞는 조직조차 갖추기 어렵게 만들어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제도가 제자리로 갈 수 있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염태정·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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