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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표밭에 1조원 쏟아 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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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당」이니「10당」이니 하는 소리가 또 나돌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20억 원 또는 10억 원을 써야 당선된다는 소리다.
소선거구제가 되어 유례없이 치열한 경쟁이 예상돼 무한투자·무한경쟁으로 나오면 선거 경비는 그만큼 올라갈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지방에선 부락마다 기10만원 현금 봉투가 나가고 「교통비」니 「식권」들이 지급돼 자칫하면「금권바람」이 심각한 선거 후유증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아직 선거경비를 책정하지 않았지만 대략 평균 1억2천만원쯤 될 예상이다. 선거구가 넓은 편인 해남 진도가 최고로 1억6천만원쯤 될 전망.
중선거구였던 지난 12대 때가 평균 7천여 만원이었던데 비하면 이번에 2배 이상 오르는 셈이지만 그나마 이 경비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이고 실제로 수억 원씩의 지출을 후보 모두 예상하고 있다.
민정당이 공천후보를 고르면서 10억∼15억 원 현금 동원 능력을 제1조건으로 했다는 설도 이런 사정을 감안한 때문이다.
시골 선거구에서 수수하게 쓴다 쳐도 2억∼3억 원은 더 나가는 판이다.
이번 선거엔 과연 얼마만큼의 돈이 뿌려질까. 1개 선거구 평균 경쟁률이 6대 1가까이 된다고 치 면 후보 수는 1천∼1천3백 명 선이 된다.
이들이 적게는 2억∼3억 원, 많게는 10억 원 이상 쓴다면 후보자들만 쓰는 경비가 6천억∼7천억 원에 달하고 거기에 중앙당의 선거경비·각종 지원사업 등 이 포함되면 선거기간 중 1조원에 가까운 돈이 흐르는 셈이 된다.
『10억 원이 뉘 집 애 이름이냐』는 사람이 많겠지만 실제로 후보의 지출명세서를 들여다보면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A후보는 민정당 공천으로 서울에 출전하고 있다. 출마는 생전 처음이라 현역 의원의 코치를 받아 만들어 놓은 예산서는「예의」를 갖추는 데만 10억 원이 넘게 든다.
주요내용은 △조직관리 △홍보 물 제작 △유세대책 △창당대회·사무실 운영·각종 행사 지원 등 4개 공개항목과 비밀항목인 투표직전 작전용이다.
A후보의 지역구는 10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동마다 지도 장·청년회장·부녀회장이 있다. 이들 대대장 급에게는 명목 활동비 외에 기10만원의 격려 비 지급이 필요하다.
지역 장(투표구 담당)은 35명. 이들에게도 따로 지원 금이 나간다. 활동 장(통 담당)은 2백20명, 부활동장(반 담당) 은 1천4백50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1회 5만∼10만원대의 격려금을 지원해야 한다.
1천7백 명이 넘는 공 조직에 공급되는 군자금만도 1회에 1억2천만원.
종반까지 가면서 2∼3차례 특별지원을 하면 3억 원 안팎의 돈이 든다.
벽보·팸플릿·인사장 등 홍보물 제작 및 우송에도 대충 5천만∼6천만원은 든다. 특히 지난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홍보물도 디자인·인쇄에 있어 고급화가 이루어졌다. 컬러는 기본이고 만화도 써야 한다. 5만 가구에 보내는 우표 값만도 4백 만원. 주소를 써넣고 봉투를 붙이는 아르바이트 학생도 수십 명이 필요하다. 홍보 물은 5∼6종을 준비했다.
여당 후보는 유세 장 특별대책에도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유세 장에서의「기 제압」은 운동원들의 사기와 직결되기 때문에 「박수부대」의 동원은 불가피하다. 1회 최소한 5백 명 이상은 불러모아야 한다. 대통령선거 때부터 동원 단가가 올랐다. 당원들도 2만원 정도에는 잘 움직이질 않는다. 점심값 만원을 더 계산하면 3회 유세에 모두 1억 여 원은 쉽게 깨진다.
지구당 사무실 운영은 인건비·차량유지비 등을 포함, 5백만∼1천만원이 소요.
당원 단합대회는 소 지역별로 약 수십 차례 갖게 되는데 10만원 안팎이 들어 있는「금일봉」을 준비. 노인정 방문·직능단체모임·각종 동창회 등에는 대개 5만∼30만원이 든 봉투를 내놓아야 하고 결혼·초상·회갑 등에는 꽃을 보내거나 아니면 부조를 해야 한다. 이밖에 투-개표 참관인·아르바이트 학생(일당 2만원) 동원 등을 포함, 이 항목도 1억 원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가장 커다란 항목은 D데이 직전의「융단폭격」. A후보는『투표일전 2∼3일 동안의「현금 박치기」가 중요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투표일 하루 전에 뿌린 자금이 가장「유효」하다는 것이다.
지역 유권자는 모두 12만 명. 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무리다. 당 지시대로 40%를 겨냥한다. 만약 1만원 정도의 선물을 준비해도 4억8천만원이 드는 셈이다. 여기에「누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애초에 계획했던 효과를 보자면「플러스 알파」도 어쩔 수 없다.
이같은 A후보의 계산(총 10억 6천만원)은 그래도 보통 수준.
또한 돈 깨나 있는 사람은 유권자에 대한 「인사」도 경우에 따라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다.
그동안 당에서 지원한 것이라곤 창당 자금 1천만원. 그러나 창당대회에는 3천여 만원이 들어갔다. 대구 모 지구에서 공천 경합에 나섰던 후보는 간단히 1억 원을 날렸고 강원도의 한 신청자도 5천만원 정도가 깨졌다.
야당 후보의 경우 지출항목은 훨씬 줄어든다. 우선 여당처럼 거대한 공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동·통·반 책 등 사조직을 가동시켜야 하고 홍보물 제작도 남 못지 않게 해야 한다. 이래저래 4억∼5억 원은 기본 경비로 들어간다.
여당의 경우 농촌 후보는 사정이 훨씬 낫다. 단합대회에도 「막걸리 값」으로 5만원 정도 내놓으면 그런대로 체면이 선다. 지도 장(읍·면 단위)·지역장(투표구)·활동장(리)·부활동장(부락)등 조직원들에게 지급하는「실탄」의 단가도 도시에 비해 훨씬 낮다.
후보는「밑 빠진 독」에 붓는 물처럼 계속 쏟아 넣어야 하는 선거자금을 조달하는 일이 가장 고민스럽다.
우선「자기주머니」부터 털어야 한다. 서울 지역의 신진인사 C후보(민정)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고향 땅을 처분해 급한 대로 5억 원을 마련했다. 60평 짜리 아파트를 저당 잡혀 1억 원을 구했고『이 친구 국회의원 한번 만들어 보자』며 나선 친구·동창들이 1억 원을 모금, 7억 원의 군자금을 비축했지만 벌써 2분의1 가량이 투입됐다.
여당 후보의 경우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하는 돈줄은「지역협의회」. 동·읍·면별로 각각 50∼3백 명의 지역 유지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적게는 수십 만원, 많게는 수천 만원씩의 지원 사격을 한다.
실탄보급을 요청하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중앙당도 대책 마련에 부심.
선거자금 조달 및 지출은 극비사항 인지라 정확한 내용은 알 길이 없지만 「돈의 채널」을 따라 들어가 보면 어렴풋한「그림」이 가능하다.
민정당의 경우 공식적으로 가장 크게 의존하는 재원은 당의 재정위원들. 대부분이 중견 실업 인인 이들의 숫자는 현재 65명. 대개 한번 지갑을 열 때마다 1억∼3억 원을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최대한 동원했지만 당으로서는 이번에도 손을 벌려야 할 판.
민정당 후원회의 지원도 적지 않다. 운영위원 30명을 포함, 현재 회원은 8백88명인데 이들의 모금액수는 법에 의해 연간 20억 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여차하면 올해의 모금 분을 총선 전에 앞당겨 받을 수도 있다.「필승당비」모금 캠페인도 만만치 않다. 전국 2백50만 당원(민정당 주장)을 대상으로 중앙위운영위원은 2백 만원, 중앙위원은 50만원, 그리고 평 당원은「마음대로」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는데 50억 원이 넘게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어림잡아 2백억 원은 동원이 가능하고 여기에「보 일듯 말듯」한 기부금까지 합치면 지구당에 대한 화력지원에 어느 정도 체면이 선다.
민정당은 서울·부산 등 대도시 취약지구를 A급으로 하여 전체를 4∼5급으로 분류, 차별 지원할 방침인데 후보들이 기분 나빠 할 까봐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번 12대 선거 때엔 재력 있는 10여명에겐 전혀 실탄지급을 안 했는데 이번엔 그 숫자가 50∼60명이 될 예상. 그 대신 서울 등 몇 개 정책지구엔 집중투자 할 작정이다.
정치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는 야당은 「전국구를 팔아」선거살림을 치른다. 전국구 가격은 일반적으로 당선에 필요한 선거비용과 맞먹게 되니 최소 10억 원, 당선 안정권은 15억∼20억 원을 호가하는 판이다.
12대 때 당선권내 민한당 전국구(1∼15번)의「공시가격」이 5억 원이었으니 3∼4배나 뛴 셈.
민주당이나 평민당이 각 지구당에 5천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중앙당 선거경비를 마련하자면 2백억원 가까이 필요하다. 딴 데서 염 출할 데가 없는 야당으로선「제 닭 잡아먹지」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김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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