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귀환뒤 北 "판문점→경의선 육로" 경로변경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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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예술단 ‘판문점→경의선 육로’, 개성에서 우회전 왜?

북측이 평창 겨울 올림픽 축하공연을 위해 방한하는 삼지연 관현악단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보내겠다고 23일 밤 제안했다. 경의선 육로는 개성공단을 오가기 위해 2003년 개통된 도로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뒤 폐쇄됐지만 지난 21일 현송월 단장 등 북측 실무진들이 공연 후보지를 점검하기 위해 방한(21~22일)하면서 다시 뚫렸다. 예술단은 강릉(8일)과 서울(11일)에서 한 차례씩 공연한 뒤 다음 달 12일 같은 경로로 귀환할 예정이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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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은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접촉 때 판문점을 통해 예술단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현 단장이 귀환한 지하루 만에 북측이 예술단의 이동 경로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북한이 경로를 바꾼 이유는 뭘까.

북 15일 "판문점으로 내려가겠다"→23일 "경의선 육로로 가겠다" #현송월 단장 현장 점검 하루 뒤 입장 바꿔 #판문점 이동에 대한 정치적 의도 언론이 지적하자 수정? #열차등 대체 수단 고려했을 수도, 열차로 남측까지 이동도 가능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예술단이)우리 측으로 오려면 경의선 CIQ(출입사무소)를 통과해야 하고, 악기와 장비가 같이 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점들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이 사전에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한 뒤 남측에 판문점 통과를 제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회담에 나올 때나, 대남 제안을 할 때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 지도부의 재가를 받은 뒤에 나선다”며 “북한이 제안한 내용을 바꾸기 위해선 지도부의 결심을 다시 받아야 하므로 회담이나 협의에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하면 북한이 한 차례 제안했던 내용을 바꾼 게 이례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북측 지도부가 남측의 언론을 의식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술단이 판문점으로 오겠다는 제안이 알려진 뒤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이를 접한 북측 지도부가 결심을 바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 소속의 전문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국내 여론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라며 “예술단의 판문점 이동은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거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감정이 녹아 있다는 해석이 나오자 입장을 바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측은 남북이 합동으로 스키 훈련을 하기로 한 마식령 스키장에 대해 국내 언론들이 김정은의 치적이라는 등 부정적 보도를 하자 예술단 점검단의 방한을 아무런 설명 없이 늦추기도 했다.

현 단장이 귀환 뒤 이런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보고’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판문점 이동을 제의한 이후 남북이 이 문제에 대해서 협의를 했고, 현 단장 일행과도 관련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점검단이 직접 경험한 경의선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지연 관현악단은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KTX를 이용할 예정이다. 경의선 육로의 휴전선을 넘은 뒤엔 남측이 버스와 KTX 등을 제공한다. 현 단장 역시 남측 CIQ까지는 자신들의 미니버스로 이동해 입경 수속을 마친 뒤엔 정부에서 제공한 버스로 서울까지 이동했다.

문제는 평양에서 남측 CIQ까지 이동 수단이다. 평양에서 개성까지는 1992년 완공된 180여㎞의 고속도로가 있지만 도로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평가다. 눈이 올 경우 제설작업도 여의치 않을 수 있어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래서 회담 대표단 등은 하루 전날 개성 시내로 이동해 숙박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술단도 개성에 미리 도착해 방한하는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

판문점을 이용할 경우 휴전선을 넘기 전후 10여㎞ 이상을 열악한 군사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악기나 장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판문점엔 출·입경을 위한 시설도 없다. 반면,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향하다 우회전을 하면 산업용 아스팔트 도로인 경의선 육로를 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판문점은 도로만 있어 차량으로만 이동이 가능하지만, 경의선 육로를 이용할 경우 북측 CIQ 옆의판문역까지 평양에서 열차로 이동할 수 있다.

일각에선 북측이 열차로 남측 CIQ까지 이동하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도라산역에 입경 심사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는 데다, 2007년 5월 시범운행을 하며 남북 철도가 연결됐지만 사실상 닫혀 있었던 만큼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길을 뚫는 의미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북한도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문제 삼으며 "대표단을 버스와 열차가 아직 평양에 있다"고 밝혀 열차 이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남측도착하면 버스와 기차를 제공할 계획이지만 북측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이동할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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