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강남행 엄마들이 이름 못 밝히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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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형수 기자 중앙일보 기자
박형수 교육팀 기자

박형수 교육팀 기자

“제 이름이 들어가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기사에서 제 사례는 빼 주세요.”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행 이사’를 고민 중이거나 선택한 부모는 도처에 많다. 정부가 자사고·외고 폐지를 추진하자 ‘비강남권’ 학부모에겐 ‘강남행’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중앙일보 1월 23일 1, 4, 5면> 그런데 취재 중 접한 부모들은 하나같이 “내 이름은 기사에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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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앙일보가 비강남 초·중등학생 학부모 632명에게 물어보니 48.4%가 "여건이 허락하면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자녀의 자사고·외고 진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 있다”고 하는 부모(458명)로 좁히면 이 비율이 62.4%나 됐다. 자기만의 고민도 아닌데 부모들은 실명 공개를 왜 꺼릴까.

어렵게 장만한 집을 팔고 은행 빚을 얻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세를 얻은 한 학부모는 이렇게 설명했다. "‘진보’를 자처해왔다. 그런데 아이 교육 때문에 강남에 왔다고 하면 주변에서 ‘교육 적폐’라 손가락질할 것 같다.” 강남행을 망설이는 다른 학부모도 "재테크 차원에서 이사 가려는 것도 아닌데 ‘특권층’처럼 비칠까 망설여진다”고 했다.

이들의 걱정은 기우(杞憂)가 아니다.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 8학군 이사를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는 기사에 붙은 댓글엔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학부모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집값은 무식한 학부모가 올려놓는다’는 비아냥이 넘쳐난다.

보다 좋은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14조)다. 불법도 탈법도 아니다. 맹자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을 누가 손가락질 수 있나. 이런데도 강남행을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손가락질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뭘까.

교육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을 ‘특권학교’로 규정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취임사에서부터 현재의 고교 체제를 ‘특권으로 불평등하고 경쟁 만능으로 서열화된 불행한 체제’라고 못 박았다. 이런 프레임은 자사고 등 폐지에 반대하거나 강남권 이사를 고민하는 이들을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현실을 부추기는 이기주의자’로 규정해 버린다.

어디에 살든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맹자 어머니 같은 평범한 부모의 역할이 아니다. 김상곤 장관이 이끄는 교육부와 국가가 떠맡아야 할 의무다.

박형수 교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