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인정한 가해자에 손 내민 피해자 … 친구 된 독일과 이스라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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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에 달한다. 극단으로 치달은 인간의 광기와 폭력을 보여준 대학살, 홀로코스트는 20세기의 최대 비극이다.

양국 대사가 말하는 화해의 조건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 공동 주최 #대량 학살의 기억은 독일의 의무 #배상 뒤따른 사죄에서 진정성 느껴

전쟁이 끝나고 60여 년, 놀랍게도 이른바 가해자와 피해자인 독일과 이스라엘은 친구가 돼 있다. 어떻게 독일과 이스라엘은 원한과 분노를 넘어 서로 ‘친구’라 부르는 사이가 된 걸까.

지난 22일 남산에 있는 주한독일문화원에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 기념 문화주간’이 개막했다. 2005년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제정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1월 27일)’을 맞아 양국 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다. 강연과 다큐멘터리 상영 등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행사는 24일까지 열린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대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화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들려줬다.

22일 서울의 독일문화원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에서 두 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보인 하임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임현동 기자]

22일 서울의 독일문화원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에서 두 손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보인 하임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임현동 기자]

양국 대사관이 행사를 공동 개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하임 호셴 이스라엘 대사(이하 이)=올해가 두 번째인데 우리가 먼저 독일 대사관에 제안했고, 독일 측에서 즉시 긍정적인 답을 줬다. 양국의 좋은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다.

슈테판 아우어 독일 대사(이하 독)=먼저 제안해 준 이스라엘에 감사하다. 과거 독일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 행위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런 행사를 통해) 공동의 미래를 함께 쌓아나갈 수 있다.

독일은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있다. 과거의 일을 계속 사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물론 아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간에 필요한 일이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그와 같은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다. 그것이 독일연방공화국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그 기둥을 뽑아버릴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무엇 때문에 독일의 사과를 받아들이게 됐나.
=현재의 독일인들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감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독일은 화해를 위한 행동을 보여줬다. 지금도 배상이 이뤄지고 있고, 수용소에선 수많은 추모 행사가 열린다. 양국의 도시들이 결연을 하고, 많은 젊은이가 교류한다. 홀로코스트를 추모하기 위한 활동들을 통해 독일은 유럽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됐다.
반대하는 국민은 어떻게 설득했나.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용서하라고 우리가 설득할 수는 없다. 1952년 당시 서독과 유대인 피해 배상 협약을 체결할 때에도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1965년 수교한 뒤 텔아비브에 독일 대사관이 문을 열 때도 시위가 열렸다. 지금도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여전히 독일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현실이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가 정상의 이런 행동이 화해에 도움이 됐나.
=독일의 사죄에는 여러 가지 실제 행동이 뒤따랐다. 추모행사 등 앞서 언급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독일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화해가 엘리트들의 프로젝트가 되어선 안 된다. 화해는 감정의 문제다. 양국의 젊은이들이 교류하고, 이스라엘과 독일의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 1952년 독일이 배상을 약속한 협약이 오늘날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은 과거를 기억할 때 가능하다.

위안부 협정을 둘러싼 논란 등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양국에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매우 민감한 역사적 이슈이기 때문에 조언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양국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양국이 독일·이스라엘처럼 화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일 관계와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독일·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화해의 전제조건을 말하고 싶다. 피해자는 손을 내밀어줬고, 가해자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도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책임감과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 이것이 우리가 화해에 다다른 두 가지 방식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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