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친구가 된 독일과 이스라엘…양국 대사가 밝힌 화해의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은 약 600만 명에 달한다. 극단으로 치달은 인간의 광기와 폭력을 전시한 대학살, 홀로코스트는 20세기의 최대 비극이다.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 기념 행사 #주한 독일·이스라엘 대사관 공동 개최

전쟁이 끝나고 60여 년, 놀랍게도 이른바 가해자와 피해자인 독일과 이스라엘은 친구가 돼 있다. 60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희생자들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데엔 억겁의 시간도 모자랄 터.
대체 어떻게 독일과 이스라엘은 서로 ‘친구’라 부르는 사이가 된 걸까.

지난 22일 남산에 있는 주한독일문화원에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 기념 문화주간’이 개막했다.
2005년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제정된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일(The 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 1월 27일)’을 맞아 양국 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다. 강연과 다큐멘터리 상영 등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행사는 24일까지 열린다.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와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정한 화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들려줬다.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일 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양국 대사관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임현동 기자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일 대사(왼쪽)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양국 대사관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임현동 기자

양국 대사관이 행사를 공동 개최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하임 호셴 이스라엘 대사(이하 이)=올해가 두 번째인데 우리가 먼저 독일 대사관에 제안했고, 독일 측에서 즉시 긍정적인 답을 줬다. 양국의 좋은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다.

슈테판 아우어 독일 대사(이하 독)= 먼저 제안해 준 이스라엘에 감사하다. 과거 독일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 행위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런 행사를 통해) 공동의 미래를 함께 쌓아나갈 수 있다.

 홀로코스트 기억하는 것, 독일의 책임 

독일은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있다. 과거의 일을 계속 사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 물론 아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간에 필요한 일이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그와 같은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갖고 있다. 그것이 독일연방공화국을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그 기둥을 뽑아버릴 수는 없다.

22일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행사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한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임현동 기자

22일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행사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한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 대사. 임현동 기자

이스라엘은 무엇 때문에 독일의 사과를 받아들이게 됐나.

=현재의 독일인들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감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독일은 화해를 위한 행동을 보여줬다. 지금도 배상이 이뤄지고 있고, 수용소에선 수많은 추모 행사가 열린다. 양국의 도시들이 결연을 하고, 많은 젊은이가 교류한다. 홀로코스트를 추모하기 위한 활동들을 통해 독일은 유럽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됐다.

반대하는 국민은 어떻게 설득했나.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용서하라고 우리가 설득할 수는 없다. 1952년 당시 서독과 유대인 피해 배상 협약을 체결할 때에도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1965년 수교한 뒤 텔아비브에 독일 대사관이 문을 열 때도 시위가 열렸다. 지금도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여전히 독일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현실이다.

22일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행사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 한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 임현동 기자

22일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 행사 개막식에 앞서 인터뷰 한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 임현동 기자

행동으로 이어진 독일의 사죄, 진심을 알 수 있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가 정상의 이런 행동이 화해에 도움이 됐나.

=독일의 사죄에는 여러 가지 실제 행동이 뒤따랐다. 추모행사 등 앞서 언급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독일의 진심을 알 수 있다.

=화해가 엘리트들의 프로젝트가 되어선 안 된다. 화해는 감정의 문제다. 양국의 젊은이들이 교류하고, 이스라엘과 독일의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고 있다. 1952년 독일이 배상을 약속한 협약이 오늘날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은 과거를 기억할 때 가능하다.

 가해자는 책임 인정하고 피해자는 손 내밀었다

위안부 협정을 둘러싼 논란 등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역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양국에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나.

=매우 민감한 역사적 이슈이기 때문에 조언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양국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양국이 독일·이스라엘처럼 화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일 관계와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독일·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화해의 전제조건을 말하고 싶다. 피해자는 손을 내밀어줬고, 가해자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물론 시간도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책임감과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 이것이 우리가 화해에 다다른 두 가지 방식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이동규 인턴기자

유대인 600만명 목숨 앗아간 홀로코스트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됐던 유대인 아이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됐던 유대인 아이들.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당시 유대인 6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최대의 대학살’로 꼽힌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이 자국과 독일군 점령지에 있던 유대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해, 유럽 일대 유대인(900만명)의 약 60%가 목숨을 잃었다.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는 각 200만명, 100만명에 달했다.

이 중에서도 많은 유대인이 폴란드에 세워진 아우슈비츠 집단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주로 독일군 점령지 일대의 게토(유대인 강제 경리 거주지역)에 임시 수용돼 있던 유대인들이 화물 열차에 실려 이 수용소에 이송, 구금됐다.
기록에 따르면 하루 3000명씩 총 100만 명이 이 곳에서 독가스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다.

종전 이후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와 유대인 생존자들에게 사과와 애도를 표해왔다. 지난 1970년에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어 사죄했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계속됐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계속됐다.

2000년대 들어선 요하네스 라우 전 대통령(2000년)·호르스트 쾰러 전 대통령(2005년)·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2008) 등 독일 정부 수반이 이스라엘 의회를 찾아 공개 사과를 했다. 또 독일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2005년)을 맞아 베를린에 국립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에는 UN이 총회 결의안 60/7호를 채택해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1945년 이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해방됐다. 결의안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민족·종교 집단에 가한 불관용과 증오 및 선동·괴롭힘·폭력을 규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UN은 회원국에 “미래 세대에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전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홀로코스트는 여러 장르의 작품으로도 다뤄졌다.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임레 케르테스의 자전적 소설『운명』, 독일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수기인 『안네의 일기』가 대표적이다.
영화로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1993년)’ 등이 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