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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식 신입연수 논란된 기업들 "무박2일 행군 등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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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금융회사에 재직중인 A씨는 신입사원 연수 때 지리산 무박 2일 행군을 했다. A씨는 "오후 4시쯤 출발해 다음날 새벽 도착하는 강행군이었다. 구급차가 뒤따라 왔고 다리를 다쳐 응급처지를 받은 동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최근 신입사원 군대식 연수가 문제되고, 기사가 나간 이후에 올해부터는 회사가 행군 프로그램을 없애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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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국민은행은 신입사원 행군과 피임약 지급으로 논란이 됐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국민은행은 신입사원 행군과 피임약 지급으로 논란이 됐다. [중앙포토]

최근 국민은행이 신입사원 연수에서 100㎞ 행군을 실시하며 여성 신입사원들에게 피임약을 지급까지 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다. 여론의 눈총을 받게 된 국민은행 측은 "여성 직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뒤 자의적 요청에 따라 피임약을 준비해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연수에 참여한 이들은 "인사팀이 연수기간 내 생리주기를 조절하라고 피임약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른 신입사원 군대식 연수 논란 #보도 이후 일부기업 "군대식 프로그램 없애겠다" #전문가 "자율성, 직무역량 중심 연수가 기업경쟁력에 도움"

현대자동차, 포스코, 한국전력 등 국내 손 꼽히는 대기업들도 한라산 등반이나 1박2일 해병대 캠프 등을 실시해 사회적으로 빈축을 샀다. 4차 산업혁명과 창의성이 중요한 시기에 직무역량과 무관한 군대식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신입사원 연수로 당시 1박2일 해병대 캠프를 다녀온 B씨는 "내가 입사를 했지 입대를 했나 싶었다. 해병대 캠프가 직무능력 향상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시대착오적 신입사원 연수가 논란이 된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신입사원 연수에서 행군과 같은 군대식 프로그램을 없애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21일 "올해부터 논란이 된 지리산 행군 프로그램을 변경해 등반 대신 연수 마지막 날에 호미곶 일출을 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들은 해병대 캠프를 진행하기도 했다. [해병대캠프 블로그 캡쳐]

일부 기업들은 해병대 캠프를 진행하기도 했다. [해병대캠프 블로그 캡쳐]

#기업문화 때문에 입사포기 생각도, 전문가 "신입교육 변화해야" 

어렵게 취업의 문을 통과한 신입사원들은 기업의 연수프로그램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지난 14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중견기업 이상에 취업한 신입사원 4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연수원 교육을 받고 온 후 입사를 포기하고 싶어졌거나 실제로 포기했는지 여부에 대해 3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 이유로는 '나랑은 맞지 않을 것 같은 기업 문화를 확인했기 때문'이 2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수 기간 내내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10%) '원래 입사할 생각보다 기업에 대해 탐색만 해볼 생각으로 입소했기 때문'(8%)이 뒤를 이었다. 신입 사원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매 시간, 분별로 꽉 채워진 빈틈없는 일정'(18%) '집체교육 등을 통한 지나친 단체 생활 강조'(12%) '이른 기상시간'(10%) 교육뿐 아니라 극기훈련, 야외활동, 레크리에이션 등에 참여 강제'(9%) 순이었다.

익명을 원한 모 기업 인사담당자는 "최근 관련된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단체 활동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면서 "행군 등 오래된 군대식 연수를 고수해온 일부 임원들도 겸연쩍어 한다. 세상이 바뀐 것 아니냐. 아무래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군대식 신입사원 연수를 없애려는 변화가 기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4차산업혁명이 주목받고 사업의 조직방식이나 인사관리 방식 등 기업문화가 전체적으로 바뀌어가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관료제에 기반한 군대식 교육으로는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도, 직원 역량 극대화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맹목적인 충성 대신, 자신의 직무역량과 커리어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조직훈련, 신입사원 교육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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