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고래 잡으러 포경선을 타다 인간의 욕망에 작살을 꽂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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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문학이 있는 주말

얼어붙은 바다

얼어붙은 바다

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열린책들

좋은 소설은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나. 재미와 의미(문학성), 난이도, 이렇게 세 항목을 임의로 선정한다면 두루 평균점 이상을 주고 싶은 장편소설이다. 한강이 맨부커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2016년, 맨부커 본상 후보에 오르고 역시 같은 해 뉴욕타임스 최고의 책 10권 안에 포함된 ‘실적’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고래 잡는 포경산업이 끝물이던 19세기 중반 영국을 배경으로 한 해양소설인데, 이 분야 걸작들이 워낙 강렬해 뭘 더 써볼 게 있을까 싶지만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해양소설 대표작 『모비딕』이 인간과 거대 자연의 끝장 대결을 통해 인간성 혹은 동물 본성의 극한을 살폈다면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기적의 생환 스토리는 리더십 서적의 소재로까지 쓰인다. 자연보다 인간에 주목한다. 영국 작가 이언 맥과이어의 소설은 아무래도 섀클턴 쪽이다. 거칠고 장대한 자연과 조우하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포경선이라는 운명 공동체를 함께 하는 선원들 간의 갈등과 음모, 피 튀고 살 찢기는 하드 고어 폭력이 소설의 서사를 구동시키는 주 동력원이다.

소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포경선 작살수 헨리 드랙스는 세상의 악이란 악은 모두 타고난 것 같은 존재다. 바다에서 고래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친 싸움을 벌이는 그는 뭍에서도 거칠 게 없다. 그에게 생각이라는 건 없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실행에 옮긴다. 죄책감 없이 살인하고 강간한다.

그와 맞서는 자리에 작가는 영국민에 비해 낮은 계층 취급을 받는 아일랜드 출신 의사 패트릭 섬너를 배치한다. 한데 섬너는 인간의 선의(善意)를 대표하는 존재는 아니다. 마약에 찌든 그는 건실한 인생 설계나 정의로운 행동과는 거리가 있다. 끝까지 드랙스를 물고 늘어지지만 당한 만큼 되돌려준다는 차원이 강하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는 보루 같은 설정이다. 두 사람의 대결이 이들이 승선했던 포경선 볼런티어호의 침몰을 둘러싼 음모와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 열린 결말이 아니라 한쪽의 확실한 승리로 소설이 끝나기 때문에 더 깔끔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영국 BBC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겠다고 나선 건 그래서일 것 같다.

무엇보다 신문기사 문장처럼 소설 문장이 간결, 명료하다. 자연이나 상황 묘사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대화 장면이 많아 빨리 읽힌다. 잘 읽히고 후한 평가도 받는, 웰메이드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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