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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보다 잘나가는 2위,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

중앙일보

입력

1위보다 유명한 2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위보다 유명한 2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5년 17회 쇼팽 국제 콩쿠르의 주인공이 피아니스트 조성진(24)이었다면 2010년 16회엔 잉골프 분더(33)였다.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다. 조성진은 우승자였지만 분더는 2위였다. 하지만 1위를 한 율리아나 아브제바(33)보다 더 화제가 됐다. 심사위원 중 일부와 청중이 분더를 옹호하며 채점 방식에 대해 항의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18일 서울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분더는 “콩쿠르 당시에는 연주 생각 밖에 안 하기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며 “하지만 감사한 일이고 수상 자체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콩쿠르와 예술은 원래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등수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콩쿠르 스캔들에서 알 수 있듯 분더의 쇼팽은 독특하다. 약간은 느리고 몽환적인듯 하지만 모든 선율에 의미를 실어 부드럽게 노래하는 실력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마음 놓고 노래하는 방식은 테크닉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분더는 “물론 나에게도 어려운 작품은 있지만 못하겠다 싶은 곡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네 살부터 바이올린을 취미로 배웠다.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4세 때다.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늦었지만 빨리 따라잡았다. 분더는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치고 싶어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1년 만에 칠 수 있었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에서 2위를 했을 때는 피아노를 시작한 지 6년 밖에 안 됐을 때다.

그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훨씬 많이 연습하고 다른 음악을 들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루에 5~6시간씩 꼬박꼬박 연습을 했고 피아노 뿐 아니라 성악ㆍ오케스트라ㆍ현악기 등 모든 종류의 음반을 들으며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3~4년 동안 수천장은 들은 것 같은데 거의 먹어 치우듯 들었다.”
테크닉 뿐 아니라 음색, 악상 표현 등에 대해서도 꾸준히 고민했다. “흔히 피아노는 건반을 한번 누르면 음색을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미묘한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는 “사람의 신경계(nerve system)를 위로하지 못하는 음악은 의미가 없다”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말을 좋아한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분더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이다”라고 했다. 19세기 후반의 낭만시대 음악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바흐ㆍ모차르트ㆍ베토벤 등 고전시대의 작곡가들도 감정적 음악이라는 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감정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감정적이지 않은 음악은 아니다.”

쇼팽 콩쿠르 이후 세계 무대에서 줄기차게 섭외를 받은 분더는 최근 연주 횟수를 줄이고 있다. “일년에 70번 정도까지 연주했었는데 요즘에는 35회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대신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아내와 함께 ‘아파시오 닷컴’이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시작했다.
‘아파시오 닷컴’은 온라인으로 예술을 교육한다. 음악 뿐 아니라 미술과 문학을 아우른다. 그는 “내가 피아노를 시작할 때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느라 몇시간씩 밤 기차를 타고 도시 사이를 오갔다”라며 “이 시스템으로 재능 있는 학생들이 힘들이지 않고 예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또 “이익을 바라고 세운 회사가 아니라 내 사명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프리카부터 미국까지 넓은 지역의 학생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목표다.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분더는 18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바르샤바 필하모닉, 지휘자 야체크 카스프치크와 함께 쇼팽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쇼팽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그건 ‘왜 사느냐’는 질문처럼 답하기 힘든 것”이라며 “의미 없이 흘러가는 패시지가 하나도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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