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처럼 닭장 앞 클린룸, AI 바이러스 막을 해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16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무궁화농장’. 산란계(알을 낳는 닭) 4만6000마리를 키우는 농가다. 계사 출입문 앞에는 1㎡ 남짓한 ‘전실(前室)’이 설치돼 있다. 1m가량 길이의 패널 지붕이 있고, 양옆도 패널로 막은 구조다.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을 연상케 한다.

적용 가금류 농가, 1% 못 미쳐 #전실 설치해 신발·의류 소독하고 #계사 출입 전엔 방역복 갈아입어 #“분변 피하고 출입자 분리 효과” #AI 바이러스 등 직접 유입 차단

농장주 송복근(67·대한양계협회 경기도지회장)씨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권유로 내 돈 들여 전실을 설치했다”며 “전실 안에 소독약이 든 방역 분무기와 방역 신발, 방역복, 발판 소독조 등을 준비해 놨다”고 말했다. 송씨는 “계사에 들어가기 전에 전실에서 몸을 소독한 뒤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방역 신발로 바꿔 신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붕이 설치돼 있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새 등 조류의 분변을 피할 수 있고, 계사 출입자가 계사와 분리된 공간에서 방역을 마칠 수 있어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의 축사 유입을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AI 때문에 정부와 지자체·농가 등이 방역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역 체계는 주로 농장 출입에 따른 바이러스 감염 및 확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도 양주시 ‘무궁화농장’ 계사 출입문 앞 ‘전실(前室)’에 방역 물품이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시 ‘무궁화농장’ 계사 출입문 앞 ‘전실(前室)’에 방역 물품이 있다. [전익진 기자]

문홍길 농친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은 “전실에서 밖에서 신던 신발(장화)을 벗고 축사 안 전용 신발로 갈아 신은 뒤 손 소독을 하고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이러스 대부분은 차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AI 바이러스를 옮기는 건 신발 바닥이 첫째고 그다음이 손인데, 전실을 설치하면 바이러스의 축사 유입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농진청에서 AI 예방을 위해 고안한 모델이 전실이다. 하지만 아직 전실을 모르는 농가가 대다수여서 실제 전실을 설치한 가금류 농가는 전체 1%도 안 될 것이라는 게 농진청 설명이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농진청은 방역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전실 안에 발판 소독조(소독기)를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농진청 실험 결과 암모늄 희석액이 있는 발판 소독조에 장화를 담근 직후 세균은 53.5% 억제됐으며, 소독 후 4시간이 지난 뒤에는 총 세균의 99%가 없어졌다.

정부는 전실 확산에 적극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시행 중인 축사시설 현대화사업의 하나로 축사에 방역시설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 일정액을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며 “이 제도를 활용하면 가금류 농가에서도 전실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 때문에 비상이 걸린 지자체에서도 전실의 방역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최권락 경기도 조류질병관리팀장은 “축사 소독과 농가에 드나드는 차량·반입물·사람 등에 대한 기본적인 방역 활동에 더해 축사 입구에 전실을 설치해 운영한다면 AI 방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양주·수원·전주=전익진·최모란·김준희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