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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생부모가 원하면 아동 정보 공개” 입양가정 불안 빠트린 입양특례법 개정안

중앙일보

입력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신생아 [중앙포토]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신생아 [중앙포토]

“생부ㆍ생모가 요구하면 입양 아동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공개돼 논란이 예상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입양아동 학대ㆍ사망사건 후 정책변화와 과제’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입양특례법 전부 개정안을 공개했다.

  남 의원은 “지난해 대구ㆍ포천에서 발생한 입양 아동 사망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민간 입양 기관이 전담하고 있는 현행 입양 제도를 국가 책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입양제도의 공공성 강화하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이날 토론회에서도 큰 이견이 없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입양 절차를 전담하고 있는 민간 기관들은 입양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대신 아이를 입양 보내기 원하는 생부ㆍ생모는 지자체에,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양부ㆍ양모는 보건복지부에 신청하게 된다. 복지부 산하에 입양심사위원회를 두고 양부모 자격 심사를 하고, 이후 가정법원에서 입양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김승일 복지부 입양 특별대책팀장은 “지자체에 아동 전담 공무원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있더라도 어린이집 등 보육 업무와 동시에 하고 있다”며 “아동전담팀을 두는 게 최선이라 보고 행정안전부와 협의 중인데 200여명 정도밖에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계속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선미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가정법원에 입양 심판 청구를 할 때 현재는 입양 기관이 친생부모 서류 등 대행해서 하는 부분이 있는데, 개정안에 따라 이러한 업무를 모두 양부모가 하도록 한다면 너무 큰 부담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지적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내입양인식 개선을 위한 사진전 '천사들의 편지 15th-하나된 열정'을 찾은 관람객들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15년을 맞은 '천사들의 편지' 사진전은 입양과 입양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사진가 조세현과 대한사회복지회가 함께 매년 연말에 진행한다. 2017.12.20/뉴스1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국내입양인식 개선을 위한 사진전 '천사들의 편지 15th-하나된 열정'을 찾은 관람객들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15년을 맞은 '천사들의 편지' 사진전은 입양과 입양아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사진가 조세현과 대한사회복지회가 함께 매년 연말에 진행한다. 2017.12.20/뉴스1

 입양 절차에 앞서 숙려기간을 현행 생후 1주일에서 생후 30일로 연장하는 내용도 논의됐다. 개정안을 제안한 소라미 변호사는 “미혼 부모에 대한 지원이 함께 가야 하겠지만, 원 가족 보호를 위해 숙려기간을 늘려야 한다”며 “필리핀은 3개월, 체코도 6주 정도의 숙려기간을 가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구체적인 지원책 없이 숙려기간만 늘린다고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먹는 미혼 부모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조태승 주사랑 공동체 목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입양 문턱이 더 높아지는데,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입양 가지 못하고 기관에서 평생 자라게 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건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입양특례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남인순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입양특례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남인순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입양 부모들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입양정보공개청구권 조항이다. 입양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토론회 전부터 걱정을 담은 글이 쏟아졌다. 생부ㆍ생모가 청구하면 입양 아동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에는 ‘국제입양으로 한정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네이버 카페 ‘건강한 입양가족 모임’에서 한 입양 부모입양 부모(twin***)는 ‘이러한 제한은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국내 입양으로 확대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입양아동이 미성년이면 입양 부모입양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생부모와의 만남 여부를 부모인 내가 결정했을 때 훗날 아이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며 불안한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엄마는 “입양은 생부ㆍ생모의 친권 포기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인데 친권 없는 사람에게 아이 찾을 권리를 준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국내 입양 대부분은 공개 입양이 아닌데 입양된 줄 모르고 살던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친부모라는 사람이 나타나 일상을 휘저을 권리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제12회 입양의 날인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동방영아일시보호소에서 아기들이 국내외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동방영아일시보호소는 갓 태어난 30여 명의 아기를 돌보고 있으며 2~4개월이 지난 후에도 입양을 가지 못한 아기는 위탁가정에 보내져 입양이 될때까지 보살핌을 받는다. 2017.05.11.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제12회 입양의 날인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동방영아일시보호소에서 아기들이 국내외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동방영아일시보호소는 갓 태어난 30여 명의 아기를 돌보고 있으며 2~4개월이 지난 후에도 입양을 가지 못한 아기는 위탁가정에 보내져 입양이 될때까지 보살핌을 받는다. 2017.05.11. scchoo@newsis.com

 이날 자리에는 입양 부모ㆍ해외입양인 등 100여명이 참석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네덜란드 입양인 출신인 시몬느 음미는 “우리는 입양기관이 필요하고, 입양 부모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의 잔재를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오늘도 지하철 안에서 ‘입양은 사랑이고, 입양은 행복’이라는 중앙입양인의 광고를 보고 있다. 이런 참혹한 현실은 진정 과거와 단절하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남인순 의원은 “국내 아동의 해외 입양을 최소화하고, 원가정 보호를 우선하자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국가가 입양을 책임지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개정안에 담아내겠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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