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대 기업들은 스펙 대신 공감 능력 있는 인재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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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8' 에서 세계적인 IT 기업 인텔이 선보인 5G 터널. 인텔은 "5G가 상용화되면 기가비트급 속도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차량과 사물인터넷, 무선 광대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이 촉진될 것"이라 예고했다.[연합뉴스]

지난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8' 에서 세계적인 IT 기업 인텔이 선보인 5G 터널. 인텔은 "5G가 상용화되면 기가비트급 속도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차량과 사물인터넷, 무선 광대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이 촉진될 것"이라 예고했다.[연합뉴스]

신년기획 '미래역량 100인보' ②기업인이 말하는 미래 인재

“2020년까지 전자제품 95%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탑재되고, 인공지능(AI)의 영향으로 18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 230만개가 창출된다.” 세계적인 IT 자문기관 가트너가 전망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 모습이다.

기존 일자리 다수는 AI와 로봇이 대체 #미래역량 요구하는 새로운 일자리 출현 #각 분야 전문가 100인에게 물어보니 #"기업은 이전과 다른 인재상 요구할 것" #융복합 시대, 소통·협업 능력 갖춰야 #컴퓨팅 등 IT 분야 기술은 필요조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놓고 많은 이들이 ‘직업 증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즈번 교수는 2013년 논문 ‘고용의 미래’에서 “20년 이내에 미국의 직업 중 47%가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다.

반면 한편에서는 일자리 감소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긍정론을 편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영국 런던 정경대 교수는 지난해 한 학술포럼에서 “현재 820개 주요 직업 중 34%가 AI와 로봇으로 대체되겠지만 새로운 일자리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런던 정경대 교수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 '일자리 증발' 사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일축했다. [중앙포토]

런던 정경대 교수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 '일자리 증발' 사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일축했다. [중앙포토]

이들의 예상대로면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할수록 기존의 일자리 중 대다수는 AI와 로봇으로 대체돼 사라지고, 대신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폴 킴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원장 역시 지난해 ‘글로벌 인재포럼 2017’ 기조강연에서 “현재 초등학생의 65%는 현존하지 않는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유럽 최대의 컨설팅 회사 롤런드버거는 『4차 산업혁명, 이미 와 있는 미래』란 제목의 책에서 “미래 사회의 모습을 미리 알고 대비한 소수는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즐기지만, 대다수 인구는 일자리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운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차지하고 새 시대의 혜택을 누리게 될까.

중앙일보와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이러한 물음의 답을 구하기 위해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명사 100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창의력(29명·중복응답 포함)과 인성(28명), 융·복합능력(26명), 협업역량(26명), 커뮤니케이션능력(18명)을 주로 꼽았다. 더불어 유연성과 컴퓨팅(각각 9명), 공감능력과 감수성(각각 7명), 문제해결력과 대인관계능력(각각 6명) 등도 중요한 역량으로 주목했다.

이 같은 미래 역량은 지금껏 기업들이 추구해온 전통적 인재상과는 다소 다르다. 출신학교와 학위, 학점과 스펙 등이 경쟁적인 업무 방식에서 중시되던 것과 달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성·협업·공감 능력 같은 새로운 역량이 주목받고 있다.

홍상완 한국콜마 전무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AI와 로봇으로 인한 인간 노동의 소멸”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계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인간만의 고유한 감성, 진실한 소통 능력과 공감력이 탁월한 역량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홍 전무의 예상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의 싱크탱크인 매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 내용과도 일치한다. MGI는 “로봇이 향후 13년간 3억7500만~8억 명의 근로자를 대신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업종별로는 업무가 예측 가능하고 변수가 적은 회계사, 패스트푸드 점원, 법률 보조원 등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정원사, 배관공, 어린이·노인 돌보미 등은 업무를 획일화하기 어렵고 인간 사이의 깊은 공감과 소통이 필요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전승훈 이순신대전 대표는 “미래 사회에는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컴퓨팅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업에서는 암기와 기억을 통해 많은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선발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과 데이터는 무료에 무한대로 제공된다. 이러한 기초 지식을 활용해 창조적이고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한발 더 나아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컴퓨팅 역량을 갖춘 인재가 주목을 받을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 경쟁에 본격 돌입한 기업들은 “IT 분야 전문 기술이 핵심 미래 역량”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랄드 크루거 독일 BMW 그룹 회장은 “신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세계와 연결되며 상품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이를 더욱 활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IT 관련 전문 기술”이라며 “IT 분야 전문가를 채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글로벌 IT 기업인 IBM의 경우, 미국 전역에서 근무하는 직원 중 3분의 1은 4년제 대학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IBM은 인재 채용에서 학위보다 중요한 역량으로 사이버보안, 데이터 사이언스,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 지식을 꼽는다.

BMW의 자율주행차. 하랄드 크루거 BMW 그룹 회장은 "IT 분야 전문 기술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인재들"이라며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BMW코리아]

BMW의 자율주행차. 하랄드 크루거 BMW 그룹 회장은 "IT 분야 전문 기술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인재들"이라며 "이들을 확보하기 위한'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BMW코리아]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초연결·융복합의 시대를 살아나갈 수 있는 경쟁력은 ‘협업’이고, 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관용·배려·공동체 의식이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역량”이라 강조했다. 송 부사장은 “지금 페이스북에 접속해보라. 도시와 국가를 넘어선 세계화가 이미 이뤄졌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경쟁 무대는 세계로 넓어졌고 경쟁 상대는 타인뿐 아니라 AI로까지 확대된 상태”라 설명했다. 그는 “넓고 심화된 무대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는 유연성, 로봇이나 AI도 협업의 대상으로 끌어안는 관용을 갖춘 이들의 성과가 극대화될 것”이라 말했다.

김성범 tvN 책임프로듀서 역시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극소수의 혜택받는 자와 노동에서 소외된 대다수 인간으로 구별된 극단적 불평등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모든 인간이 과학 기술의 혜택을 공유하는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며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발휘돼야 미래 사회의 전망이 밝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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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관용·배려 등 인성이 미래 역량으로 강조되는 것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 교수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에 대해 "수학·과학 등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감정 지능을 길러라"고 조언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유영산 중앙유웨이 대표는 "교육에서도 국어·수학 등 과목에 대한 지식을 암기시키는 수준에서 벗어나 예체능 활동을 강화해 감성·공감·협업 등 마음 근력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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