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하영선칼럼

아시아의 다음 천년 수도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프 정국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내년 말 대선을 위한 본격적 선거전이 예정보다 당겨진 느낌이다. 그럴수록 하루 하루의 시국 변화를 넘어선 멀고 넓은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공부모임과 함께 중국의 고도들인 시안(西安, 옛 장안), 베이징, 열하(熱河), 선양(瀋陽)의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시안의 야시장은 세월의 흐름을 잊게 했다. 어디선가 금방 혜초나 의상 같은 구법승이나 조기 유학생의 원조인 최치원이 눈앞에 금방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야시장의 이국적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신라에서 여기까지 험한 바닷길을 넘어서 찾아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당나라 장안은 바그다드와 함께 인구 100만을 육박하는 천하 제일의 도시였다. 실크로드의 출발지로서 동과 서의 물품, 문화, 종교가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세계의 중심가였다. 중국이 제국의 모습을 처음 갖춘 진나라의 시황제 시절부터 당나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아시아 천년사를 대표할 만한 도시는 역시 장안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미래의 시안보다는 과거의 장안을 보러 모인다. 1000년 전의 장안이 오늘의 시안보다 더 세계화된 도시였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답사의 꽃은 열하였다. 티베트의 세계적인 절 포탈라궁을 산 위에 그대로 옮겨 놓은 작은 포탈라궁에서 바라다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푸른 하늘은 유난하게 가까이 눈 안으로 들어왔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속세의 청조(淸朝) 여름궁전 피서산장(避暑山莊)은 장난감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18세기 조선조의 이단아 연암 박지원은 남다른 연행기록인 '열하일기'에서 8월의 더운 날씨에 베이징부터 5일 밤낮의 힘든 여정 끝에 열하에 도착해 인상 깊은 글을 남겨 놓고 있다. 연암은 청조가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1년의 몇 개월씩을 지내면서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을 단순히 휴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중요한 위협의 대상이었던 북쪽의 몽골에 대한 고도의 천하질서 유지용 억지(抑止) 전략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동시에 산장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산정에 그렇게 거대한 포탈라궁을 짓게 하고, 유교 국가인 조선 연행사들에게 티베트 불교의 2인자인 판첸(班禪) 라마를 만나 보도록 강요할 정도로 신경 썼던 것도 잠재적 위협의 주변 민족들을 달래기 위한 천하질서 유지 행위라는 것을 잘 읽고 있었다. 당의 멸망과 함께 쇠락한 장안에 이어 금.원.명.청의 수도로서 아시아의 천년사를 대표한 베이징은 열하의 피서산장 같은 노력 없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조의 첫 도읍지로서 만주족의 모습을 이제는 옛 궁전과 묘, 그리고 박물관에서밖에 찾아 보기 어려운 선양을 돌아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호란(胡亂) 이후 끌려와 온갖 고초를 겪었던 소현세자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의 애환과 청의 강요로 추운 겨울 불필요하게 선양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산해관으로 내려가야 했던 연행사들의 힘든 여정도 떠올랐지만 더 큰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시안과 베이징에 이어 다음 천년 아시아의 수도는 어디로 옮겨 갈 것이며 21세기 풍수지리의 요건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열흘간의 중국 천년 고도의 주마간산 답사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뒤늦게 토리노 겨울올림픽의 쇼트 트랙 금메달 획득의 감격적 장면을 녹화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목소리를 죽이고 화면을 보면서 뒤늦게 감격을 함께했다. 타자(他者)를 품는 여유 없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진행하는 설명과 해설은 화면의 감동을 살리기보다 죽이고 있었다.

월드컵의 계절이 4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붉은 악마의 응원도 4년 전보다는 한 단계 승화된 모습을 준비해야 한다. 타자를 품으면서 스스로를 응원할 줄 아는 격조를 찾자. 세계가 부러워하는 붉은 악마가 돼 보자. 아시아 천년대계의 첫걸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다.

하영선 서울대·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