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친분" 급한 트럼프에 국무부 "평창대화 없다"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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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북한과 지금 많은 좋은 대화가 진행 중이며 선한 기운(energy)들을 보고 있다”며 북ㆍ미 대화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한 데 이어 김정은 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것이다.

국무·국방 "비핵화 플랜갖고 협상장 나와라" #15일 밴쿠버 회의 틸러슨·매티스 동반 참석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가진 45분간 인터뷰에서 “내가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알면 당신들은 놀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미치광이”“범죄자”“병든 강아지”“꼬마 로켓맨” 등 트윗으로 비난했던 건 보다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며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20개의 사례를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주 유연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연기한 데 대해서도 “북한에 좋은 메시지 하나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 기간에 한국군의 병참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로 겹치지 않도록 스케줄을 조정한 것”이란 미 국방부의 공식 설명과 달리 남북 대화 등을 위해 훈련 연기를 결정했다는 뜻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 등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선 게 한ㆍ미 두 나라를 이간질하는 시도일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내가 그들이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 대통령이고 그들은 아니라는 게 차이점”이라며 “(틈새를 벌리기 위해 박아넣는) 쐐기에 대해선 어떤 사람들보다 내가 많이 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연합뉴스]

앞서 달려가는 트럼프와 달리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평창올림픽에서 북ㆍ미 대화는 없을 것”이라며 속도를 조절하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스티브 골드스타인 국무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국제사회 일원으로 행진하는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그건 출발일 뿐”이라며 “(북ㆍ미 대화가 성사되려면) 북한은 조속히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할지 플랜을 가지고 협상장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때까지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갖고 협상장에 나올 때까지 최대한 제재ㆍ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브라이언 훅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올림픽에서 북ㆍ미 대화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아니다(No)”라고 한마디로 선을 그었다.

데이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1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한반도 안보회의’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함께 참석한다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포괄적 접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무장관의 외교적 협상이 주도하지만,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하기 위한 것 ”이라면서다.

 이에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북한이 굴복하고 비핵화로 나오라는 거고, 북한은 국제 사회가 인정할 만큼 유리한 국면을 기다리면서 팽팽한 샅바 싸움 중”이라며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북·미 대화가 열리기)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한반도 전문가들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과장과 변덕스러운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트럼프 레토릭의 반전이 대북 정책 변화까지 의미하느냐”는 중앙일보의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 세부 사항보다는 승부와 과도한 칭찬에 보다 신경을 쓰는 개인적 성향임을 이해해야 한다”며 “남북 대화가 자신의 압박 전술의 결과라고 판정했기 때문에 대화 진전에 기뻐하고 공로를 칭찬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누지 대표는 “만약 북한이 향후 수개월 동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실험에 나선다면 그의 태도가 다시 쉽게 반전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김정은 위원장의 1월 1일 신년사 이후 북한이 도발을 중단함에 따라 압박에서 개입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무게 중심을 이동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센터(CNAS) 아태안보소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압박과 개입 양쪽 모두를 갖고 있고, 두 가지는 북한의 행동에 반응한다”며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외교와 개입이 보다 큰 역할을 하는 시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올림픽 이후 훈련 재개 일정 미정" ...추가 연기 가능성

미 국방부 브리핑에선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18일 이후로 연기된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일정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10일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남북 회담 이후 가장 중요한 일이 한ㆍ미 군사훈련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추가 연기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다.
데이나 화이트 국방부 대변인은 “올림픽 이후에도 연합훈련이 언제 재개될지 아직 잠정적인 상황이냐”는 질문에 “훈련은 올림픽 이후에도 여전히 잠정적 상태”라며 “아직 구체적 일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화이트 대변인은 하지만 “우리는 중단(suspension)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며 “훈련은 한반도의 중대 행사에 따라 일정을 조정한 것일 뿐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미 훈련의 4월 이후 추가 연기를 미국 측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전혀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추가 연기는 많은 프로세스를 거쳐야 할 큰 일이지만 앞으로 상황 변화는 예단할 수 없다"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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