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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에 또 마비 제주공항…‘해저터널’ 필요성 다시 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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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공항 항공편 이용객들이 12일 새벽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가 제공한 매트리스와 담요를 활용해 새우잠을 자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공항 항공편 이용객들이 12일 새벽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가 제공한 매트리스와 담요를 활용해 새우잠을 자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에 내린 폭설로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항공기 승객 7000여 명이 제주공항에 갇혔다. 전날 떠나려던 2500여 명은 비행기 결항 소식에 공항의 차가운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모포를 덮은 채 잠을 잤다. 굶주린 배는 생수로 채웠다. 2016년 1월 큰 눈이 내렸을 때도 비슷한 광경이었다. 일부 승객들은 “제주도에서 육지로 향하는 도로나 바다 아래에 터널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다.

승객 7000여명 공항 갇혀…일부 "도로나 터널 있다면" #10여 년 전부터 서울~제주 KTX 구상했지만 추진 중단 #전남도는 추진 희망, 제주도는 부정적 또는 유보 입장

폭설이 내릴 때마다 제주공항이 마비되는 사태가 반복되면서 육지에서 제주도를 초고속열차(KTX)로 오가는 구상인 ‘해저터널’ 사업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전남과 제주도의 미묘한 입장차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사업이다.

제주 지역에 최강 한파가 몰아친 11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일고 있다. [뉴시스]

제주 지역에 최강 한파가 몰아친 11일 오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보라가 일고 있다. [뉴시스]

전남도는 항공편보다 비나 눈 등 기상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KTX를 타고 이동하는 고속철도 사업을 10여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다. 기존에 깔린 KTX 호남선(서울~목포)의 남쪽 끝을 제주까지 연결하는 내용이다.

이 구상은 목포에서 땅끝 해남까지는 지상, 해남에서 남쪽 바다를 건너 보길도까지는 교량, 보길도에서 추자도를 거쳐 제주까지는 해저터널을 깔아 KTX가 달리도록 하는 것이다. 해저터널 73㎞를 포함해 제주에서 목포까지 총 167㎞ 길이의 고속철도를 놓는 대형 사업이다.

 폭설이 쏟아진 11일 오전 제설차량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눈을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폭설이 쏟아진 11일 오전 제설차량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눈을 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도는 사업비 16조8000억원에 사업 기간을 2016년부터 2032년까지로 잡고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 16년 8월에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타당성 조사 용역도 맡겼다.

지난해 3월에는 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 중간 보고회가 열렸다. 투자에 관심을 보인 민간 기업도 있었다. 해당 기업은 이 사업이 정부 정책이 반영되고 경제성(B/C)이 확보되면 투자 의향이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제주 해저터널 위치도. [중앙포토]

제주 해저터널 위치도. [중앙포토]

건설사들은 이 사업이 갖는 상징성에도 주목했다. 세계 최장 해저터널, 첨단 공법 시공 등이다.

그러나 용역 중간 보고회 이후 사업은 잠정 보류됐다. 지난해 말 최종 용역 보고서가 나왔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전남도가 제주도의 입장을 고려해 사업 추진 속도를 늦추면서다.

제주도는 김태환 지사 시절인 2007년 이 사업 추진에 긍정적이었다. 김 지사는 당시 박준영 전남지사와 함께 해저터널 건설을 국가적으로 지원해달라고 공동 건의했다. 20조원 가까이 드는 사업에 정부 지원이 필수여서다.

터키 해저터널 공사 현장.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사진 SK건설]

터키 해저터널 공사 현장.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사진 SK건설]

전남도에 따르면 최근 제주도는 이 사업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제2공항 문제 등과 맞물려 부정적이거나 적어도 유보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남도는 파악했다. 제2공항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저터널에 관심을 둘 수 없다는 뜻이다.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일부 도민들은 관광객 증가를 기대하거나 편의를 위해 해저터널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반대편 도민들은 제주도의 신비함이나 자연환경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해저터널에 반대한다.

전남도 한 관계자는 “지금 서둘러 사업을 추진해도 공사 기간에 수십 년이 걸려 2030년 무렵에나 실제 KTX가 달릴 수 있다”며 제주도의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무안=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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