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나 혼자 산다’ 패러독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부 차장

김승현 정치부 차장

“나 혼자 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사회인데 이런 도발적인 메시지를 한 예능 프로그램이 던졌다. 2013년의 일이다. 6년째 방송 중인 이 프로그램에는 매주 다양한 개인들이 나왔다. 독신의 삶을 즐기는 30~40대 배우·방송인, 부모님과 분가했거나 시골서 상경한 아이돌, 70대의 싱글 탤런트가 출연했다. 시청자의 관음증을 자극하듯, 외로움을 달래듯 그들의 ‘혼밥’과 사생활이 소개됐다.

최근엔 온몸으로 웃기는 개그우먼(박나래), 그램 단위로 몸무게를 관리하는 톱모델(한혜진), 기발한 웹툰 작가(기안84), 안방극장 감초 탤런트(이시언), 월드스타 아이돌(헨리), 그리고 명문대 출신 전직 아나운서(전현무)가 시청자의 호기심을 풀어 줬다. 음식으로 치면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같았던 프로그램은 지난해 말 이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메인 요리가 됐다. 전현무가 대상을 받은 것을 포함해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등 8개의 트로피를 받았다.

‘나 혼자 산다’던 그들이 연말 잔칫상의 주인이 된 것은 역설(逆說·패러독스)이다. 따로국밥이었던 출연자들이 ‘나 혼자 살지 않으면서부터’ 승승장구했다.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개그우먼의 주사, 톱모델의 허당기, 인기 탤런트와 스타 만화가의 무식함, 월드스타의 천진난만함이 공유됐다. 시청자는 TV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리더 전현무는 수상 소감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방송에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한 사람들”이라며 동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의 성공기를 정치권에 소개하고 싶다. 정반대의 패러독스가 일상인 곳이다. 말로는 모두가 ‘통합과 협치’를 얘기하면서 정작 ‘나 혼자 산다’. 이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친구로 만든 케미를 배워야 한다.

시작은 따로였지만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고 거기에서 파생된 프로 근성을 존중하는 자세 말이다. 연예인도 다이어트나 연애에 실패하고, 댓글에 울고 웃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솔직함은 기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발표한 신년사의 제목 ‘내 삶이 나아지는 나라’에 기대를 걸어 본다. 8000자 가까운 글에서 가장 길었던 문장 때문이다. “일상을 포기하고 치매 가족을 보살피는 분, 창업 실패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청년, 방과후 혼자 있는 아이를 걱정하는 직장맘,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우리 국민입니다.” 우리의 정치가 ‘나 혼자 고민하는’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한다. 여야와 정파의 싸움에 몰두하면 눈앞의 승리는 얻겠지만 시청자를 감동시킬 순 없다. 국민의 눈총이 무서워 원수를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오히려 성공적일지도 모른다. 그런 패러독스를 보고 싶다.

김승현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