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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빙자‘18억 사기’…가족사기단 검거

중앙일보

입력

[사진 방송화면 캡처]

[사진 방송화면 캡처]

결혼을 빌미로 여성들을 속여 18억원을 가로채 달아난 가족사기단 부부가 검찰에 붙잡혔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9월 그것이 알고싶다(1091회, 기이한 가족의 탄생 그리고 잔인한 공모)를 통해 방송된 바 있다.

피해 여성 2명과는 결혼식…1명과는 혼인신고 #“스톡홀롬 증후군에 빠져 자신이 김씨 일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착각”

수원지검 형사4부(서정식 부장검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등 혐의로 김모(50·여)씨와 남편 이모(47)씨를구속기소 했다고 1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2011년 1월 아들 박모(29)씨를A(26·여)씨와 교제하도록 한 뒤 같은 해 혼인신고 없이 결혼식만 올리고 같이 살게 했다.

김씨 일가족은 결혼을 준비하던 때부터 A씨 부모에게 거액의 혼수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까지 13억원을 가로챘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대전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인 자신을 의사, 사업가로 꾸미는 등 직업과 나이, 재산을 모두 속였다.

이런 수법에 당한 여성들은 A씨를 비롯해 모두 6명이다. 김씨 등은 20·30대인 이들을 상대로 지난해 7월까지 17억9700만원을 받아 챙겼다. 김씨와이씨는 계모임 등을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자신들이 화목한 가정인 것처럼 연출해 호감을 산 뒤 여성들이 결혼을 결심하면 그때부터 갖은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김씨 일가족은 피해 여성에게서 더는 돈을 받아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잠적하고 다음 범행을 준비했다. 사기단 일당은 피해 여성 2명과는 결혼식을 했으며, 1명과는 혼인신고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여성들은 이들을 고소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생긴 갈등”이라며 혐의를 부인한 박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이들의 범행은 지난해 8월 SBS TV의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를 시작하자 박씨가 자수하면서 드러났다.

박씨는 1건에 대해서만 자수했지만, 검찰은 추가 수사를 벌여 다른 피해 사례를 확인, 박씨를구속기소 하고 달아난 김씨와이씨를 지명수배했다.

이들에게 10억원이 넘는 돈을 뜯긴 A씨는 자신이 피해를 본 사실을 모르고 김씨 등과 함께 달아났다가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지난달 9일 이들에게서 간신히 도망쳤다. 김씨 등은 생활비를 벌어오라며 A씨를 수시로 구타하는 등 학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에게서 탈출한 뒤에도 자신의 사기 피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A씨를 설득해  지난달 19일 강원도 고성에서 김씨와이씨를 붙잡았다.

검찰 관계자는 “A씨는 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스톡홀롬 증후군에 빠져 오랜 시간 자신이 김씨 일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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