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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밝힌다고 아들 돌아오지 않아 … 군 시스템 바뀌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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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2일 남재철 기상청장에게 모범공무원상을 받고 있는 이동현 주무관(오른쪽). [사진 기상청]

지난 2일 남재철 기상청장에게 모범공무원상을 받고 있는 이동현 주무관(오른쪽). [사진 기상청]

“이런 상을 안 받고 자식을 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착잡하네요.” 8일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기상청 이동현(50) 주무관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모범공무원상 기상청 이동현 주무관 #유탄에 장남 잃고도 처벌 원치 않아 #“상 감사하나 자식 살았더라면 …”

그는 지난해 9월 26일 강원도 철원 육군 6사단에서 발생한 군 사격장 유탄 사고로 숨진 이 모(21) 상병의 아버지다.

이 주무관은 ‘2017년 하반기 모범 공무원’으로 뽑혀 지난 2일 기상청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고(故) 이 상병은 당시 전투 진지 공사 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에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든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이 주무관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가해 병사의 미래를 위해 신원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 주무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해자를 밝힌다고 해서 우리 아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벌을 준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알고 나면 더 슬퍼지기만 하겠죠. 그 친구도 더 슬플 것이고, 서로 간에 마음만 아픈 거죠. 차라리 모르는 게 그 사람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을 겁니다.”

그는 “내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나 싶지만, 기상청 동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았다”며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철원 총기 사고는 이 상병의 사인이 도비탄(跳飛彈,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튕겨 나간 탄) 아닌 유탄(流彈, 조준한 곳에 맞지 않고 빗나간 탄)으로 바뀌는 등 군 당국의 미숙한 대응으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국방부의 특별조사 결과, 사격장과 군 인솔자인 간부들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로 밝혀졌다.

이 주무관은 “사고 당시 군 간부들에게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군대를 보내겠느냐. 이 문제가 수정되지 않으면 절대 둘째 아들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잘못된 군 매뉴얼이 겹쳐서 발생한 사고이니 만큼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부터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기상청에서 일을 시작한 이 주무관은 항공 예보와 관측 업무를 주로 하는 등 23년째 항공기상 업무에 종사해 왔다. 2011년부터는 항공기상청 산하 무안공항 기상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 주무관은 평소 훌륭한 성품과 남다른 성실함으로 다른 직원들의 모범이 돼 왔다”며 “아들을 잃은 아픔을 모두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위했던 그의 마음을 기려 모범공무원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성실하게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한 공직자를 모범공무원으로 선발해 포상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2일 공직사회에 큰 귀감이 된 이 주무관을 비롯한 일곱 명을 하반기 모범공무원으로 선정해 상을 수여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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