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핀위치 쓴 선수가 남자부 우승...경희대 총장배 골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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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아마추어 골프대회 장면. 이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중고 아마추어 골프대회 장면. 이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지난해 7월 열린 경희대 총장배 중고 골프 대회 남자부에서 여자부 핀 위치를 사용한 선수가 우승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대회는 경희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시니어골프협회가 주관해 지난해 7월 27일(예선)과 28일(본선) 2라운드로 경기도 골드 골프장에서 열렸다. 남자부에서 우승한 A선수는 예선에서 티잉그라운드는 남자 선수들의 것을 사용했으나 핀의 위치는 여자 선수들과 함께 썼다. 예선에서 8언더파를 친 A선수는 본선에서 남자 선수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기해 2언더파를 더해 합계 10언더파로 우승했다.

대회를 주관한 시니어골프협회는 “A선수가 참가자격이 되고 참가비도 냈으나 참가신청서가 누락돼 예선 출전 명단에 포함시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번외조에 이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번외조는 참가자격이 없어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 조건으로 참가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조다.

골프 룰을 관장하는 대한골프협회는 “번외라는 것 자체가 계획에 포함되지 않아 공식 기록이 아닌 만큼 함께 집계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유권해석했다.

그러나 경희대 총장배 경기위원회 전원은 ^첫날 경기가 예선이었고 ^오전, 오후 난이도 차이가 별로 없으며 ^프로 대회가 아니고 아마추어 대회임을 감안해 A선수의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경기위원장을 맡은 김동욱씨는 “경기 취소가 맞지만 참가자격이 되는 A선수를 희생시킬 수 없어 부득이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시니어골프협회 해명대로 A선수가 번외조에서 경기했더라도 단순 실수이고 동등한 조건이었다면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경희대 총장배 전국 중고 골프대회 팜플렛.

경희대 총장배 전국 중고 골프대회 팜플렛.

그러나 경기 조건이 달랐다. 예선전이 열린 7월 27일 오전엔 남자부, 오후엔 여자부와 번외조가 경기했다. 참가 선수들의 학부모들은 “오전에는 전장이 긴 왼쪽 그린, 오후에는 짧은 오른쪽 그린을 사용했다. 특히 파 5홀 같은 경우에는 그린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2온 여부가 갈리기도 했다. 명백한 난이도 차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시니어골프협회는 “당시 장마 때여서 골프장 측에서 그린 보호를 위해 오전과 오후 다른 그린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으며 번외조에서 뛰는 A선수 때문에 오전과 오후 최대한 비슷한 변별력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골프에서 경기 조건이 다르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고 경기 성립이 안 되는 것은 상식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KLPGA 투어 KB금융 스타 챔피언십에서는 경기 중 그린과 프린지의 경계를 명확하게 해 준 경기위원회의 행동이 동등한 경기 조건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어 선수들이 보이콧을 하고 해당 라운드가 최소됐다.

경희대 총장배는 대회요강에 “대한골프협회의 규칙을 적용한다”고 되어 있다. 대한골프협회는 “경희대 대회에서 핀 위치가 달랐다면 A선수를 포함한 번외조의 성적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했다.

학부모들은 “백보 양보해 참가자격이 있는 선수가 주최측 실수로 번외조에 편성됐고 구제하려 했다면 오전에 남자 선수들 바로 뒤에서 같은 핀 위치로 경기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니어골프협회 관계자들은 “당시 다른 일이 많아 현장에 나가지 못해 챙기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시니어골프협회는 대한체육회나 대한골프협회 산하단체가 아닌 임의단체다. 이 단체에 대회 경기위원회를 포함한 대회 주관과 운영을 맡긴 경희대의 문제도 지적된다. 대회 상위 입상 선수들은 경희대 입시에서 가산점을 받게 된다.

당시 대회에 참가한 선수의 학부모인 박계정씨는 경희대에 ^우승한 A선수의 실격 및 순위 재 공지 ^경희대 및 시니어골프협회, 경기위원회의 공식 사과 ^올바른 경기위원 선정 및 품격에 맞는 대회 개최 및 진행을 공식 요구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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