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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하고 시원한 북녘의 ‘쩡’한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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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28면

▶동무밥상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진길 10 (합정동 381-64)
전화: 02-322-6632
평일 오전 11시 30분 ~ 오후 9시(브레이크타임 오후 3시~5시30분)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월요일 휴무)

강혜란의 그 동네 이 맛집 #<14> 합정동 ‘동무밥상’

서울 마포구 합정 로터리 쪽에 홀트 아동복지회 건물이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고아들을 시작으로 해외에 보낸 한국 입양아들이 숱하게 거쳐간 민간 복지기관이다. 그 건물 앞 대로 건너편 양화진 성지로 가는 골목에 ‘동무밥상’이 있다. 현관 유리에 윤종철(62) 대표의 사진이 큼직하다. ‘함경도 출신 북한 요리사가 선보이는 북한 음식’이라는 입간판도 눈길을 끈다.

1998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한 윤 대표는 2000년 한국에 왔다. 2015년 말 식당을 열 때 터를 골라준 이는 요리 기획 스튜디오 ‘호야쿡스’의 이호경(41) 대표다. 사단법인 ‘해외 입양인 연대’(망원동 소재)에서 6년간 일했던 이 대표는 입양아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 각지의 요리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유럽·동남아 등 글로벌 요리 강습의 일환으로 윤 대표의 북한 요리가 소개됐다. 내친 김에 두 사람은 식당을 합작해 차리는 데까지 나아갔고, ‘동무밥상’이란 팝업 식당 이름이 그대로 상호가 됐다.

“처음엔 누가 이 골목까지 찾아올까 했죠. 입소문이 나면서 석달 만에 식당 앞에 줄 서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음식이란 게 양심으로 하면 통하는구나. 대박이란 게 딴 게 아니구나’ 했어요.”(윤 대표)

24석으로 시작한 식당은 지난 10월 옆 가게까지 터서 40석으로 커졌다. 이 대표 지분을 정리하고 독립하면서도 “대출을 일전도 안 받았다”는 게 윤 대표의 자랑이다.

새로 단장한 목재 테이블에 밑반찬이 깔렸다. 콩나물김치·백김치·무절임이다. 보통 평양냉면을 ‘슴슴하다’고 하는데 밑반찬도 한 박자 쉬어가는 듯한 맛이다. 최근 AFP통신은 분단 70여년 만에 남북한의 김치 맛도 달라졌다면서 “북한 김치는 재료가 부족하던 시절 그대로의 맛”이라는 국내 연구자의 말을 인용했다.

윤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니 일식과 양식이 혼합돼서 중심을 못 잡는 것 같다. 무엇보다 김치가 달다. 평양식이 멀겋다고 하는데 북한은 원재료의 맛을 살리기 때문에 더 건강식이라고 생각한다. 잘 담근 함경도의 김치는 잎사귀를 뜯으면 ‘쩡’한(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난다.” 실제로 김치 담그듯 절이고 숙성시킨 콩나물김치는 아삭한 원재료의 식감이 ‘쩡’하게 입 안을 채웠다.

쩡한 맛은 이 집의 대표상품 평양냉면에도 배어난다. 육수에 섞는 동치미가 찬조출연해 내는 맛이다. 평양 대표 맛집 ‘옥류관’의 냉면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유일하게 달리하는 점이기도 하다. “서울 물엔 대동강 물의 쩡한 맛이 없기 때문에” 물맛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란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통으로 10여 알 넣는 들깨다. “있는 듯 없는 듯한 냉면 맛을 즐기다가 들깨가 한 두 개 씹히면 고소한 게 기분이 딱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함경북도 온성 태생인 그는 군대 시절 옥류관에 배치돼 요리를 배웠다. 이곳에서 주방의 기초를 닦고 군 복무 10년 내내 인민군 장성 식당에서 일했다. 그럼에도 한국에 와선 요리사 경력을 숨겼다. 북한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직종이었던 데다 여느 탈북자들처럼 ‘쉽게 돈 벌 궁리’를 했던 탓이다. 다단계 사기 등으로 정착금을 털리고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기도 했다.

한국에 온 지 10여년 만에 다시 식칼을 쥐게 된 것은 북한 요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오해도 한몫 했다. “서울 와서 처음에 ‘함흥냉면’ 집이 보이길래 ‘탈북자 선배가 하나보다’ 하고 들어갔다가 입맛만 버리고 나왔어요. 간판만 함흥을 내걸었지 양념은 온갖 기성제품을 쓰고…. 길거리 순대도 당면만 가득해서 이 맛도 저 맛도 안 나더라고요.”

이에 반해 동무밥상의 찹쌀순대는 일요일 오후 반나절을 공들여 만드는 ‘수제 순대’다. 다진 돼지고기에 갖은 야채, 불린 찹쌀 등을 한데 넣어 속을 만들어 직접 손질한 돼지 작은창자에 채워넣는다. 넓은 접시에 잎사귀를 두르듯 얇게 깔려 나오는 순대는, 떡볶이 국물을 묻히지 않고도 담백한 맛 자체로 젓가락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소위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 ‘노가다 작업’이지만 “최고급·정통 북한식을 익힌 요리사로서 제대로 된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한줄 한줄 만든다.

메뉴는 조금씩 바뀐다. 재래시장을 다니면서 ‘이 재료에 어떻게 북한식 조리법을 적용시킬까’ 궁리하는 게 일이다. 오리탕국밥도 그렇게 나왔다. 서울 사람들이 오리구이를 즐기는 데서 착안해 평양의 인기메뉴인 오리탕을 재현하되 된장을 약간 첨가했다. “평양은 추우니까 기름기 있는 육수를 즐기지만 한국에선 느끼한 맛을 없애니 더 인기가 있더라”고 했다.

요즘 그는 북한음식을 소개하는 요리책을 준비 중이다. 한두번 평양에 다녀온 경험으로 옥류관 맛을 들먹이는 손님 일부에게 실제 북한 요리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북한에선 개인이 요리책을 내지 못하는데, 내가 책을 낸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탈북자들도 오긴 하는데, 입맛에 맞다고 김치만 수북이 먹어요. 사실 내 음식이, 그 사람들은 북한에서도 거의 못 먹어본 것들입니다. 걱정인 게, 내가 데려다 교육시킬 만한 후배 탈북자가 없어요. 마음 같아선 2호점, 3호점 열고 싶은데….”

북한인들도 거의 못 먹는 북녘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TV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 제의 속보가 울렸다.

글·사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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