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질타 … 중국의 국회 '전인대'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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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가운데)의 업무 보고가 끝난 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원자바오 총리와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서류 가방을 직접 든 후 주석의 모습이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지 마라."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인민들의 반감만 산다. 잘못했으면 반성하고 감독을 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 8일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全人大)에서 연출됐다. 여느 민주주의 의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인대의 이런 징후는 이미 개막 전부터 보였다. 개막 하루 전 전인대는 대표(의원)들을 초청해 전자투표 방식의 공정성을 과시했으며, 정부에 첫 '구속성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에 대해 이처럼 강한 질타가 쏟아진 것은 의외다. 질책은 국유기업의 직원용 복지정책을 심의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먼저 공공 교통기관이 도마에 올랐다. 팡팅위(方廷鈺) 대표는 "베이징시의 일부 공공 교통기관과 전철공사의 직원들이 신분증을 이용해 무임승차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는 국가재산 횡령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교통부 공무원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되는 관행"이라며 "직원들의 무임승차는 업무를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무임승차는 직원들의 소속감과 명예심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팡 대표는 "업무시간 중 무임승차는 양보한다 해도 업무시간 외 무임승차는 정말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무임승차가 직원 본인에게만 국한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또 무임승차를 해야만 명예심이 높아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다시 따졌다.

전기회사 직원들이 무료로 또는 싸게 전력을 이용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이에 대해 전력공사 측은 "대답하기 불편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왕샤오츄(王曉秋) 대표는 "그렇게 답변하면 인민들의 반감만 산다.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자원은 모두 국가의 것이다. 잘못했으면 인민과 언론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말하기 불편하다는 말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라고 꾸짖었다.

병원 직원들이 진료비를 면제받는 일도 도마에 올랐다. 국무원 위생부의 마오췬안(毛群安) 대변인은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발 뺀 뒤 "그런 일이 정말 있다면 그건 사리에 어긋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질책은 쏟아졌다. 팡 대표는 "공무원들이 인민대표와 인민들에게 해명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어떻게 모든 인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정부만 모른다 하는가"라고 공격했다.

외국 기자들은 "대표들이 이처럼 행정부를 몰아붙이는 것은 처음 본다"며 "전인대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중앙일보 '달라진 전인대' 보도
중국 신문 톱 기사로 받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의 국제뉴스 전문 일간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본지 3월 8일자 10면 톱 기사 '확 달라진 중국 전인대'를 3월 9일자 6면 머리기사로 소개했다. 환구시보는 본지의 보도 내용 전문을 중국어로 번역해 소개한 뒤 기사 끝에 '3월 8일 한국(중앙일보)에서, 작자 진세근, 번역 조동국 '이라는 주를 달았다.

◆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중국 헌법상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매년 3월에 열린다. 헌법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정한다. 매년 국가 예산안을 처리하고, '경제 발전 5개년 계획'도 확정한다. 공산당이 결정한 국가주석과 총리도 추인한다. 성.자치구.직할시.군 등이 선출하는 대표로 구성되며, 소수민족들도 대표를 낸다. 대표는 약 3000명이며 임기는 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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