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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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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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저는 지금 제주에서 한 달 간 생활하고 있습니다. 익숙함을 벗어나 이른바 ‘낯설게 보기’를 하기 위해 물 건너 온 것이지요. 풍광과 날씨 모두 뭍과는 사뭇 달라 세계지도 속 모습처럼 우리가 아주 작은 땅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보니 섬 곳곳마다 예쁘게 꾸민 작은 레스토랑들과 빵집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습니다. 도시의 각박한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젊은 사업가들이라 하는데, 이런 가게의 특징은 영업시간이나 판매량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고양이와 책 몇 권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도심 책방은 영업시간도 짧고, 그마저 일주일에 이틀은 쉰다는 안내문이 걸려있습니다. 해안가 빵집은 오전 8시에 예약해야 빵을 살 수 있는데 예약된 수량만 팔고 오후 3시가 되면 문을 닫습니다. 유학생 출신 주방장이 운영하는 항구 옆 레스토랑은 종료시각인 오후 4시 전이라도 하루 목표량을 다 팔면 문을 닫습니다. 24시간 영업하며 상품이 떨어지면 옆 지점에서라도 꿔와서 필사적으로 고객을 잡으려는 대형 유통기업이나 프랜차이즈 업소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빅 데이터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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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영어 단어장의 표현 중 기억나는 것이 ‘from hand to mouth’입니다. ‘손에서 입으로 바로 간다’는 것으로 수렵채집 시대를 묘사하는 듯 한데, 위의 제주에서의 삶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필요한 것만 구해서 사는 삶 말입니다.

‘워라밸’이 지금 직장인들의 화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불안감은, 매년 치솟는 주거 비용,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사교육비, 아프고 힘들 때 전적으로 의존하기엔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복지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미래에 어찌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사회는 지금 당장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조급함을 양산하여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라는 꿈을 초등학생에게까지도 꾸게 합니다.

다니엘 밀로는 인류가 발명한 ‘내일’이라는 것이 과잉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발전에 이르게도 불행에 빠지게도 하였다 합니다. 내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오늘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배려깊은 사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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