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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재팬'日 원전 수출 총력전, 정부가 은행 대출 5조원 보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 주도의 올 재팬(All Japan) 체제’
3일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원전 수출에 올인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를 이렇게 표현했다.
히타치(日立)제작소가 영국에서 추진 중인 원전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 일본 내 3대 은행과 국제협력은행(JBC) 등이 총 1조5000억엔(약 14조 2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하고 일본 정부는 이중 3대 은행이 대출한 5000억엔(약 4조 7000억원)에 대해 전액 채무 보증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다.

히타치가 영국에 추진 중인 원전 프로젝트 #은행은 대출, 전력회사는 출자, 정부는 보증 #"원전 기술 유지 위해서라도 수출 필요" #"국민이 부담 떠안아야 하나" 반론도

해당 원전은 2020년대 중반 가동을 목표로 영국의 중부 앵글시 섬에서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며, 히타치는 2019년 중 프로젝트에 뛰어들지를 최종 판단할 예정이다. 예상되는 총 건설사업비는 3조엔(약 28조 4000억원), 히타치는 이 중 1조5000억엔 정도를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고 나머지는 출자 등을 통해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히타치는 그동안 투자에 따르는 위험 분산을 위해 일본 정부나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대출과 채무 보증을 요청해왔고, 은행들과 전액 정부출자인 일본무역보험(NEXI)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앞 바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신설이 여의치 않자 원전 수출을 통한 관련 기술 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앞 바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 신설이 여의치 않자 원전 수출을 통한 관련 기술 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중앙포토]

금융사 대출액 1조5000억엔 중 미쓰비시도쿄(三菱東京)UFJ, 미즈호, 미쓰이스미토모(三井住友) 등 일본 3대 은행이 5000억엔 정도를 빌려주고 일본무역보험이 이 같은 채무를 보증키로 했다고 마이니치는 보도했다. 나머지 1조엔은 일본국제협력은행과 영국 금융기관이 대출하게 된다.

금융사 대출 이외의 사업비 1조5000억엔은 히타치와 일본정책투자은행, 주부(中部)전력, 영국 정부 등이 출자하는 방식으로 조달한다. 결국 일본의 정부와 은행, 전력회사 등이 총력체제로 히타치의 원전 수출을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를 '총동원 체제'로 표현하며 "일본 정부는 국내에서의 원전 신설이 곤란한 상황에서 영국에의 원전 수출을 원전 기술 유지의 호기로 보고 있으며, 거액의 재무적인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라고 전했다. "원전 기술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국 프로젝트 참여가 필요하다"는 경제산업성 관계자의 발언도 함께 전했다.

신문은 이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베트남에서의 수주한 원전 건설이 백지화되는 등 어려움도 겪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후화한 원전과 화력발전소를 대체하기 위해 향후 20년에 걸쳐 새로운 원전 6기의 건설계획을 수립한 영국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마이니치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내에서도 많은 기업이 원전 건설의 채산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으며, 원전에 대한 찬반도 엇갈리고 있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채무 보증 방침에 대해서도 "왜 거액의 리스크를 국민이 부담하면서까지 정부가 사업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비단 이번 영국 사례 외에도 일본은 최근 원전과 관련 기술의 수출선을 다변화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폴란드에 차세대 원자로인 고온가스로(HTTR)를 수출하기 위한 민관컨소시엄에 들어간 데 이어 인도에 원전 및 관련 기술을 수출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출의 구체적 일정을 협의하는 일본과 인도 양국 간 첫 회의는 이달 하순 인도 서부 뭄바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렇게 '올 재팬'의 총력전으로 나서는 일본과 해외에서 원전 수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건 ‘탈원전’ 정책이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정부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대신 일본의 원자로를 수입키로 결정한 폴란드의 경우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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