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대구 쇠퇴하고···한국 지역 패권이 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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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늙어가는 서울·부산·대구 … 젊은 도시에 성장 주도권 뺏겨

산업연구원 25년간 성장률 분석 #유소년 인구 적고 고령화 속도 빨라 #제조업 시설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 #소득·인구 증가율 전국 평균 밑돌아 #경기·충남 등 성장지역으로 도약 #산업단지 들어서며 일자리 늘어 #제주, 귀촌 인구 유입으로 고성장

서울·부산·대구는 한국의 대표 도시다. 다른 지역보다 활기차고 인구도 많고, 소득도 높은 도시로 꼽혔다. 그런데 이들 지역 거점 도시의 쇠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고,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외곽으로 떠나면서 소득 기반마저 흔들린 탓이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펴낸 ‘고령화 시대의 생산인구 변화와 지역성장 변동경로’ 보고서는 한국의 지역 패권이 변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보고서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지역의 성장 경로를 분석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과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을 지역순환가설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지역순환가설은 지역의 발전단계가 ‘성장지역→정체지역→쇠퇴지역→잠재적 성장지역→성장지역’으로 순환한다는 내용이다. 소득과 인구 증가율이 모두 높으면 성장지역, 모두 낮으면 쇠퇴지역이다. 인구 증가율은 높으나 소득 증가율이 낮으면 정체지역, 인구증가율이 낮고 소득 증가율이 높으면 잠재적 성장지역이다. 기간은 1990년부터 외환위기에 직면한 1997년(1기), 1998년부터 금융위기 때인 2008년(2기), 2009년부터~2015년(3기)으로 나눠서 분석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장 눈에 띄는 건 과거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대도시의 성장 정체다. 1기 때까지만 해도 서울은 잠재적 성장지역에 속했다. 그러나 2기부터 쇠퇴 지역으로 분류됐고, 3기엔 쇠퇴 속도가 더 빨라졌다. 서울의 소득과 인구 표준화지수는 2기 때 각각 -0.35, -0.35였으나 3기 땐 -0.70, -0.99로 나빠졌다. 표준화지수는 16개 광역자치단체의 GRDP와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을 상대평가한 지수다. 서울의 표준화지수가 음수라는 건 소득 증가율과 인구 증가율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는 의미다. 반대로 수치가 높을수록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인근인 경기도와 충청지역에 산업단지와 행정 타운 등이 생기면서 인력이 많이 빠져나간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지방 거점 도시 역할을 해왔던 부산과 대구의 처지도 서울과 비슷하다. 특히 부산은 3기 때 소득과 인구 표준화지수가 각각 -0.99, -1.63으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대구 역시 하위권에 머물렀다.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다. 부산은 노인 인구(65세 이상) 비중이 15.5%로 7개 광역시 중 가장 높다. 고령화 속도 역시 빠르다. 고령화 지역(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 비중 7~14%)에 속한 건 전국 평균(2000년)보다 3년 느렸지만, 고령지역(노인 인구 비중 14~20%)은 3년 빠른 2015년에 진입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서울·부산의 유소년 인구(0~14세) 비중은 각각 11.9%, 11.5%로 전국 평균(13.6%)에 못 미친다. 가장 젊은 도시인 세종(18.2%)과 비교하면 격차가 상당하다.

대전 역시 성장이 멈춘 상태다. 2000 ~2002년엔 성장지역에 속했지만 이후 정체지역에 포함됐고, 분석 기간 중 가장 최근인 2015년엔 쇠퇴지역에 진입했다. 울산은 광역시 중 청년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젊은 도시지만 최근 조선업 불황 등의 여파로 소득 증가율이 급감했다.

대도시의 쇠퇴는 제조업 기반 시설이 인근 도시나 해외 등으로 빠져나간 영향도 컸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도시권의 정체나 쇠퇴를 ‘보몰의 병폐(Baumol’s Disease)‘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너무 급속하게 진행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건 일반적인 경제 성숙 단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생산성이 떨어진 가운데 속도가 너무 빠르면 지역 경제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허 연구위원은 “부산과 대구 등은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 같은 생계형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복합을 통한 신산업 창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 등을 통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충남·충북·경남·제주는 성장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를 제외하면 대부분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특히 충남은 3기 때 소득 표준화지수가 2.23으로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높았다. 최근 들어 GRDP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늘었고, 이로 인해 타 지역으로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 효과도 봤다.

제주는 높은 경제성장률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유입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06년 특별자치도로 승격한 이후 관광지 등 지역 개발 속도가 빨라진 효과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2005년 502만명에서 지난해 1475만명으로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귀농·귀촌 인구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일자리가 사람을 부른다‘는 지역경제학의 전통적인 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허 연구위원은 “지역이 전략산업을 육성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우선 청년층이 지역 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산업 수요와 교육, 일자리를 연계하는 프로그램부터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경북 등 농어촌 지역은 생산가능인구를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이 없어 장기간 쇠퇴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인 근로자 등 인력의 다양성을 확보해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보몰의 병폐(Baumol’s Disease)

미국 경제학자 월리엄보몰이 주장한 이론.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될 때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제조업의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해 일시적으로 소득 저하나 고용 없는 성장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 말한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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