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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방 밖에서 담뱃불 껐다더니, 방 안쪽에도 불길 치솟은 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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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이 친모의 실화 및 방화 여부를 밝히기 위해 화재 당시 행적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숨진 광주 3남매 엄마 진술 안 맞아 #경찰, 고의로 불 냈을 가능성 조사 #화재 16분 전까지 남편에게 7회 전화 #불난 뒤에도 “나 죽어븐다” 메시지

광주 북부경찰서는 1일 “아파트 화재로 사망한 3남매의 어머니 A(22)씨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추가조사를 토대로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게 해 3남매가 숨지는 원인을 제공한 혐의(중과실치사)로 긴급체포 됐다. 경찰은 화재 원인이 실수에 의한 것인지 가정불화를 비관한 방화에 의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A씨의 사건 당일 행적과 추가 진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 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가 숨졌다. 불이 나게 한 건 이들의 친모(22)였다. 친모가 같은 날 오전 1시53분쯤 술에 취한 채 귀가하고 있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 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가 숨졌다. 불이 나게 한 건 이들의 친모(22)였다. 친모가 같은 날 오전 1시53분쯤 술에 취한 채 귀가하고 있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사건 전날인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7시쯤 남편에게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를 맡긴 채 외출했다. 남편 B(21)씨는 나흘 전 이혼했지만 생활난 등을 이유로 이날까지 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A씨는 외출 후 친구와 소주 9잔을 마신 뒤 동전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31일 오전 1시53분쯤 귀가했다. 이날 아파트 CCTV에는 A씨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A씨는 “귀가 후 작은방 앞 냉장고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 막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작은방에 들어가 달래주다가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또 “작은방에 들어가기 전 냉장고 앞에 있던 솜이불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고 했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실화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중실화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상 중과실치사죄는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 중실화죄는 3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그러나 방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하고 있다. A씨가 당초 “귀가 후 라면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 뒤 잠들었다”고 진술했다가 “담뱃불을 이불에 비벼 껐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불이 난 후에도 아이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혼자 베란다로 나간 점, 119가 아닌 남편에게 먼저 구조요청을 한 점 등도 미심쩍게 보고 있다.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아파트 내부.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아파트 내부.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경찰은 또 A씨가 담뱃불을 껐다고 주장한 작은방 입구 쪽이 아닌 방 안쪽에서도 불길이 치솟은 흔적이 발견된 점과 A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남편에게 보낸 점 등에도 주목하고 있다. A씨는 전날 “나 때문에 불이 난 것 같다”고 실화 혐의를 인정했지만 “불이 난 후 아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이미 방 안 내부로 불길이 번져 진입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화재 발생 16분 전인 오전 2시10분쯤까지 남편에게 수차례 전화를 건 데 대한 조사도 진행중이다. A씨는 불이 나기 전 7차례 전화를 걸었고 불이 난 후에도 통화를 시도했다. “나 죽어븐다(죽어버린다)”는 메시지도 B씨에게 보냈다.

남편 B씨도 조사를 받고 있다. B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9시44분쯤 친구와 PC방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잠든 아이들만 남긴 채 외출을 했다. A씨가 귀가할 때까지 3남매는 4시간 넘게 보호자 없이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A씨 부부는 사건 발생 나흘 전인 지난해 12월 27일 이혼했으며 자녀 양육 문제로 자주 다퉈왔다. 31일 밤 긴급체포된 A씨는 화재 당시 다친 양팔에 붕대를 감은 채 내내 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실수로 불을 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고의로 불을 냈을 가능성이 있어 조사 중”이라며 “3남매에 대한 부검과 현장 정밀감식, 거짓말 탐지기 조사 등을 통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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