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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대 어른들에게 배우는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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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초 입춘을 맞아 세 어른을 찾았다. 금아는 "어릴 때 춘원 이광수의 지도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며 "그는 참으로 민족을 사랑한 인격자였어. 금아라는 호를 지어주고 도산 안창호 선생을 찾아 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게 해줬지"라고 회상한다. 그는 "나도 아직 몇 마일은 더 가야 해"라며 소년이 되어 함박웃음을 짓는다.

은석은 1910년 조선광문회 주시경.김두봉이 시작한 '우리말 큰사전'을 47년 만에 완간한 게 생애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도리는 없고 전술만 난무하는 것 같아. 매사 조급하면 망치기 쉬워. 재산 바쳐 독립문화운동을 한 육당 최남선, 인촌 김성수 선생을 친일파로 매도하다니 책 열심히 읽고 공부를 제대로 해야지"라며 갈등만 부추기는 세태를 탄식한다. 그래도 우리는 일제강점기 36년을 이겨낸 민족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암은 교편을 잡다 광복을 맞이한 뒤 '동아전과'를 집필했다. "그때 전국 학교에서 '동아전과'를 빨리 보내 달라고 난리였어. 호암 이병철, 성곡 김성곤 같은 선배들이 '동아전과'는 국민적 교과서라며 부러워했지. 호암은 공명(孔明)에, 성곡은 운장(雲長)에 가깝다고 할까. 두 선배는 자본도 자원도 기술도 없는 이 나라를 세계경제 10대국으로 만드는 데 헌신한 대단한 일꾼이었어"라고 회고한다. 정암은 신춘휘호를 일필휘지로 쓴다. 정사역천(精思力踐.정성을 다해 생각하고 혼신을 다해 실천하라).

송나라 주익(朱翌)이 유배지에서 명상한 인생오계(人生五計)가 떠오른다.

하루하루 영향을 미치는 마음가짐을 명심하고(生計), 좋은 스승과 이로운 친구를 만나려 애쓴다(身計). 가정이 행복의 목표이며 자식의 덕성을 함양시키고(家計), 나이 먹는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老計). 마지막으로 사계(死計), 즉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생사를 초월한 여생을 산다.

금아의 삶에서는 온유가, 은석에게선 경건이, 정암에게는 열정이 절절하다. 세 어른은 100세를 바라보며 평생 한길을 가고 있다. 이들의 삶에서 주익의 인생오계를 알 것만 같았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스승은 만나기 쉬우나 인생의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는 선현의 말씀을 새긴다.

고정일 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