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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코더’ 보은 인사의 무리수…7시간 만에 보류된 기품원장

중앙일보

입력

“하부지향적 리더십과 현장 중심 경영으로 조직 구성원과 한마음으로 뭉쳐 기품원이 국방개혁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창희 신임 국방기술품질원 원장이 29일 취임식에서 전달할 취임사의 일부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28일 산하 기품원의 제5대 원장으로 그가 임명돼 29일 경남 진주 본원에서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취임사를 끝내 읽지 못했다.

방사청은 취임식 보도자료를 보낸 지 반나절도 안 돼 “12월 29일부로 임용예정이었던 국방기술품질원장은 임용이 보류됐다”고 밝혔다. 임명 보도자료가 배포된 지 정확히 6시간 47분 만의 일이다. 이임식을 하루 앞둔 이헌곤 현 기품원장은 싸던 짐을 풀어야만 했다.

엄정해야할 정부의 인사가 웃기지도 않은 촌극이 돼 버린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임명 보류의 이유였다. 방사청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취업심사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임용이 보류됐다”고 설명했다.

이창희 위원은 지난 1월 방사청에서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고, 이전에 기품원에서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퇴직 후 3년 동안 퇴직하기 전 소속된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심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더군다나 인사혁신처는 2015년 12월 기품원을 공직퇴직가 재취업을 할 때 심사를 받아야 하는 ‘취업제한기관’으로 지정했다.

한마디로 이 위원이 기품원에 재취업 할 경우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빠뜨렸다는 뜻이다. 방사청 측은 “인사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기품원 원장은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방사청장이 임명하는 정무직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심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거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위원의 경력을 보면 방사청의 해명이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했다. 안보특보와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직함을 갖고 문 대통령의 안보공약을 다듬는데 기여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방사청을 만들 때 기여를 많이 했다. 전형적인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물이다. 국방부와 군 안팎에서 “무리한 보은 인사가 진짜 원인”이란 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결국 인사 촌극의 책임은 청와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소규모 정부 투자기관의 장도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받은 뒤 임명되는 게 한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예년이면 10월 말에 나올 장성 진급자(대령→준장) 명단도 적폐를 걸러내야 한다며 지난 28일까지 붙잡고 들여다본 청와대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가 이 위원을 ‘우리 편’이라 그냥 봐준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자기편 챙기기성 보은 인사에 대해 호되게 비판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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