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72·여)랑 며칠째 연락이 닿질 않아요. 그럴 리가 없는 분인데…"
지난 15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로 이런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소방당국과 함께 A씨가 혼자 사는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으로 출동했다.
이 건물의 주인인 A씨의 집은 반지하에 있었다. 옥탑방에 살다가 무릎이 아파서 거동이 편한 반지하 방으로 최근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출입문을 강제로 열자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A씨가 소파에 누운 채로 발견됐다. 흉기로 여러 차례 찔린 상태였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집을 뒤진 흔적이 없어 강도 사건으로 보이진 않았다.
15일 수원시 한 다세대 주택서 70대 집주인 숨진 채 발견 #경찰, 혈흔 등 통해 옆집의 50대 세입자 용의자 특정 #용의자, 지난 8일 서울의 한 여인숙서 자살…유서 없어 #월세 등 밀린 적 없고 갈등 정황 등도 발견되지 않아 #경찰, 용의자 사망한 만큼 '공소권 없음' 사건 종결키로
집 주변을 살피던 경찰은 A씨의 옆집 번호키에 혈흔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을 두드렸지만 집은 비어있었다.
경찰은 이 집에 사는 윤모(58)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하고 나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에서도 A씨의 집 안에서 윤씨의 혈액이 검출됐다.
그러나 윤씨는 지난 8일 서울의 한 여인숙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윤씨에손에선 범행하다가 다친 것으로 추정되는 상처가 발견됐다. 경찰은 윤씨가 A씨를 살해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는 지난 6일 오후 1시36분에서 오후 4시 사이에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 A씨가 이날 오후 1시36분쯤 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폐쇄회로 TV(CCTV)에는 같은 날 오후 4시 4분쯤 윤씨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 장면이 찍혔다.
문제는 윤씨가 범행을 저지를 만한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윤씨는 지난 10월 27일 보증금 300만원에 월 20만원씩을 주기로 하고 A씨의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에 입주했다. 현재까지 밀린 집세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와윤씨의 사이가 평소 좋지 않다거나 다툰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윤씨는무직인 데다 이 집에 홀로 거주했다. A씨와윤씨 모두 아들이 한 명씩 있긴 하지만 멀리 살아서 왕래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A씨의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직장인이라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된 이들이 모두 숨진 상황이라 범행 동기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용의자로 추정되는 윤씨도 사망한 만큼 조만간 이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