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된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용서 구한다”…첫 사과

중앙일보

입력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최근 사면된 알베르토 후지모리(79) 전 페루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인권유린 등으로 25년형 복역 중 최근 사면 #사면 반대 시위 속 병상서 찍은 영상 페이스북에 올려 #현 대통령 ‘탄핵 부결’과 ‘사면’ 거래 의혹 지속 #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나의 정부가 한편으로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포들을 실망하게 해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또 자신에 대한 사면 결정에 대해 “놀랐다”며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일본계 페루인인 그는 1990∼2000년 집권 기간 사법, 언론을 장악하고 국회 강제해산과 선거 조작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연임을 위해 불법적 행위를 벌였다. 정치적 라이벌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수십명을 살인 청부하는 등의 인권유린도 일삼았다.

결국 2000년 숨겼던 비리가 드러나며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이후 일본으로 망명을 떠난 그는 2005년 페루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그 결과 2009년 징역 25년형을 받아 12년째 복역 중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선고공판에서조차 무죄를 주장했었다.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은 현재 그가 입원해 있는 병상에서 찍었다. 환자복 차림으로 병상에 누운 모습이었다. 수감돼 있던 그는 지난 23일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튿날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은 ‘인도적 이유’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는 시위가 페루에서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는 시위가 페루에서 벌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자 탄핵위기에 직면한 쿠친스키 대통령이 후지모리 전 대통령 측과 ‘탄핵안 부결’과 ‘사면’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아들 켄지 의원은 쿠친스키 대통령이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를 거론하면서 의회에서 탄핵을 주도했다. 하지만 21일 탄핵안이 부결되면서 쿠친스키 대통령은 권좌에 머물 수 있게 됐다. 3일 후인 24일 결정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사면은 탄핵안 부결 이후 쿠친스키 대통령의 첫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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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는 사면 결정을 “저속한 정치적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페루 시민들도 거리에 나섰다. 시위대는 “후지모리는 살인자이자 도둑”이라며 “사면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쿠친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거론하며 “아웃 PPK(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를 외쳤다. 경찰은 병원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의 병원 진입을 막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 사무소의 남미 대표 아메리고 잉칼카테라는 성명을 내고 “페루 대통령은 사면을 독단적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며 “이번 결정은 사면에 대한 저항 측면에서 페루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전환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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