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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폐회식 가려면 평창역? 아닙니다 진부역에 내리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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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 2월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을 보기위해서는 평창역이 아닌 진부역에서 내려야한다. 대회 이름은 평창올림픽인데 정작 평창역 인근 경기장에서는 소수의 경기만 열린다. 외국인들은 훨씬 더 혼란스러울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22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진부역 모습. 평창=우상조 기자

내년 2월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을 보기위해서는 평창역이 아닌 진부역에서 내려야한다. 대회 이름은 평창올림픽인데 정작 평창역 인근 경기장에서는 소수의 경기만 열린다. 외국인들은 훨씬 더 혼란스러울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22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진부역 모습. 평창=우상조 기자

2014년 9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던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던 케냐의 축산업자 대니얼 올로마에 올레 사피트(44)는 비행기 예약이 잘못돼 낭패를 보았다. 평창에 가려고 비행기 예약을 했는데 정작 그가 내린 곳은 북한 평양의 순안공항이었기 때문이다.

역명-경기장 연계 안 돼 혼란 우려 #진부역 이용해야 주요 경기장 연결 #평창역, 스노파크 한 곳만 가까워 #주민들 역명에 ‘올림픽’ 병기 반대 #조직위 “역별 종목 안내방송 할 것” #평창, 평양과 영어표기 헷갈려 #2014년 케냐인 평양 잘못 가기도

2014년 평창을 가려다가 평양으로 잘못가는 황당한 경험을 겪은 케냐 축산업자 사피트씨. [중앙포토]

2014년 평창을 가려다가 평양으로 잘못가는 황당한 경험을 겪은 케냐 축산업자 사피트씨. [중앙포토]

여행사 직원이 검색하다 ‘Pyeongchang(평창)’ 대신 표기가 비슷한 ‘평양(Pyongyang)’으로 발권했던 것이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에 도착한 사피트는 비자 없이 입북하려는 죄로 벌금 500달러(54만원)까지 내고 베이징으로 쫓겨났다. 사피트는 “평창올림픽에 가려는 사람들은 지명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고 말했다.

“Pyongchang서 PyeongChang으로 수정”

미국 NBC도 지난 9일 “평창올림픽을 관람하려는 관광객들은 비행기에 타기 전 목적지가 어딘지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NBC는 다수의 미국인이 ‘평창’과 ‘평양’을 헷갈려 한다고 전했다. NBC는 또 “평창의 기존 영문 표기는 ‘Pyongchang’이었지만 ‘Pyongyang(평양)’과의 차별화를 위해 e를 추가하고 c는 대문자로 표기한 ‘PyeongChang’으로 수정됐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내년 2월 개막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관람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창과 평양을 혼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외버스와 최근 개통한 KTX 열차를 이용하는 경우엔 적지 않은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회 이름은 ‘평창올림픽’인데 정작 평창역 인근 경기장에서는 소수의 경기만 열리기 때문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내년 2월 9일) 입장권을 구매한 뒤 KTX 열차 예약을 알아보던 자영업자 윤경호(41·서울시 강서구)씨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 새로 개통한 경강선 KTX 노선을 알아보면서 별다른 의심 없이 도착지를 ‘평창역’으로 눌렀다. 하지만 개회식이 열리는 올림픽 플라자에 가려면 ‘평창역’이 아니라 ‘진부역’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뒤늦게 깨달았다.

윤씨는 “평창올림픽이니 당연히 평창에 내리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외국인들은 훨씬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했다.평창올림픽 기간 강원도를 찾을 외국인은 줄잡아 39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1일 최다 관람인원도 10만4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서울 강릉행 KTX가 개통됐다. 진부역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창=우상조 기자

지난 22일 서울 강릉행 KTX가 개통됐다. 진부역에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평창=우상조 기자

이에 맞춰 수도권과 강릉을 오가는 KTX 경강선이 지난 22일 개통됐다. 인천공항과 서울역, 청량리역, 상봉역에서 각각 출발해 양평역~만종역~횡성역~둔내역~평창역~진부역을 거쳐 강릉까지 간다. 하루 왕복 102편(서울~강릉 구간 일반석 기준 왕복 5만5200원)을 운행한다. 지난 22일 개·폐회식장에 가기 위해 KTX열차에 탑승했던 기자는 평창올림픽 조직위로부터 미리 안내를 받아 진부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전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한 정거장 전인 평창역에 내릴 가능성이 있다. 진부역에서 올림픽 플라자까지 자동차로 22분(19㎞)이 걸리는 반면, 평창역에서는 40분(41㎞)이 넘게 걸린다. 평창역에서 가까운 겨울올림픽 경기장은 휘닉스 스노파크(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스키) 단 한 곳뿐이다.

설상(雪上) 종목이 열리는 대부분의 경기장은 진부역에서 더 가깝다. 용평 알파인스키장, 정선 알파인경기장,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바이애슬론센터, 크로스컨트리센터,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등 6개 경기장에 가려면 모두 진부역에서 내려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KTX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알펜시아 인근에 기차역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각 역별 해발고도차에 따른 안전상의 문제로 백지화했다. 물론 강릉아이스아레나,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 강릉하키센터, 관동하키센터, 강릉컬링센터 등 5개 빙상 경기장에 가려면 강릉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진부역은 오대산이란 명칭을 병기하고 있다. 평창군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평창=우상조 기자

진부역은 오대산이란 명칭을 병기하고 있다. 평창군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평창=우상조 기자

강희업 조직위 수송교통국장은 “KTX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평창올림픽 관광객의 혼란을 예상해 현재의 ‘진부역’ 명칭을 ‘평창역’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묵살됐다”면서 “역명을 결정하는 권한은 지방자치단체(평창군)와 국토교통부에 있다. 기차역은 국가 기간시설이라 역 이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의 진부역과 평창역 명칭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했다. 진부역은 ‘(오대산)’이라는 명칭을 병기하는데, 이것도 주민들이 선택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평창군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은 잠시뿐이고, 대회 이후에는 오대산을 관광 명소로 키워야 한다는 정서가 강했다”면서 “진부역 뒤에 ‘올림픽 플라자’라는 명칭 대신 ‘오대산’을 붙여야 한다는 군민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강선 KTX 열차 객실 내부. [중앙포토]

경강선 KTX 열차 객실 내부. [중앙포토]

KTX 역 이름이 결정된 이후 조직위는 코레일과 올림픽 관광객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강 국장은 “휴대폰 앱에 좀 더 자세한 안내를 제공하고, 내년 1월 중순부터는 열차 내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평창역·진부역·강릉역에 내리면 어떤 올림픽 종목을 즐길 수 있는지 안내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종료 후 KTX 서울행 막차 타기도 빠듯

역이름뿐 아니라 운행시간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릉행 첫차는 서울역에서 오전 5시10분, 서울행 막차는 강릉역에서 다음날 오전 1시에 출발한다. 서울행 막차 시간은 평창올림픽 설상 종목 경기 중 가장 늦게 끝나는 시간(오후 11시)을 기준으로 두 시간의 여유를 두고 설정했다.

하지만 역과 경기장의 거리가 10㎞가 넘는 것을 감안할 때 두 시간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강 국장은 “코레일 측에서 막차 시간(다음날 1시)을 늦추는 데 난색을 표시해 경기가 끝날 무렵엔 셔틀버스 및 KTX 배차 간격을 좀 더 촘촘하게 조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모로코 유학생 우메이마(오른쪽)은 시외버스로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터미널로 이동했다. 장평과 진부를 들러 횡계터미널로 가는 방식이 좀 낯설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모로코 유학생 우메이마(오른쪽)은 시외버스로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터미널로 이동했다. 장평과 진부를 들러 횡계터미널로 가는 방식이 좀 낯설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강원도로 향하는 시외버스로 이동할 때도 지역 이름을 혼동할 가능성이 크다. 시외버스를 타고 올림픽 개·폐회식장에 가려면 평창터미널이 아닌 횡계터미널에서 내려야 한다. 게다가 서울 동서울과 남부터미널에서 횡계로 향하는 시외버스는 장평과 진부를 경유한다.

시외버스로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터미널로 이동해 본 모로코 유학생 우메이마 파티흐(23)는 “장평과 진부를 들러 횡계터미널로 가는 방식이 좀 낯설었다. 외국인 입장에서 언제 내려야 하는지 알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평창·강릉=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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